상처가 꽃이 되는 그런 길

 

내 안에 상처가 많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살아왔다. 어쩌면 그 상처를 보듬거나 낫길 기다려 줄 여유조차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한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혼자 아파하다가 《상처가 꽃이 되는 순서》(전미정 글, 예담)를 만났다. 상처를 제대로 만져 볼 기회를 얻은 것.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글쓴이는 문학만 할 때보다 심리 상담을 동시에 끌어안게 된 이후 더 많이 행복해졌다고 고백한다. 생각해 보니 문학은 타자를 먼저 들여다보게 하지만 심리상담은 자아를 먼저 들여다보게 한다는 시작이 다르더라고.

그렇다고 각자의 시선만 고집하면 안 될 일이기에 부지런히 서로를 만나 삶을 완성해 가는 길을 익혔단다. 그리곤 마침내 닿은 아름다운 이름, 우리. 그 이름을 공유하기 위해, 시를 통해 삶을 아름답게 연주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가득해지기를 소망하면서 ‘시 치유 에세이’를 건넨다.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 친구의 서러운 이야기를 / 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것네 // 저것봐, 저것봐 / 네보담도 내보담도 / 그 기쁜 첫사랑 산골물소리가 사라지고 /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 소리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것네. (울음이 타는 가을강, 박재삼)

그녀가 ‘공감’이라는 처방을 내리기 위해 가져온 시다. 먹고 자고 배설하고 몸을 섞는 그런 원초적 본능 말고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바로 마음과 마음을 섞는 일이다. 사람에 대한 지상 최고의 환대는 푸짐한 음식이 아니라 푸짐한 공감이라는데 나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지 혹은 내가 그런 사람인지 곰곰 생각해 본다.

오래 전에 입은 누이의 / 화상은 아무래도 꽃을 닮아간다. / 젊은 날 내내 속 썩어쌓더니 / 누이의 눈매에선 / 꽃향기가 난다. / 요즈음 보니 / 모든 상처는 꽃을 / 꽃의 빛깔을 닮았다. / 하다못해 상처라면 / 아이들의 여드름마저도 / 초여름 고마리꽃을 닮았다. / 오래 피가 멎지 않던 / 상처일수록 꽃향기가 괸다. / 오래 된 누이의 화상을 보니 알겠다. / 향기가 배어내는 사람의 가슴속엔 / 커다란 상처 하나 있다는 것 // 잘 익은 상처에선 / 꽃향기가 난다. (상처에 대하여, 복효근)

그녀는 상처를 마술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흉하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꽃처럼 피어 살랑거린다는 게 이유. 상처를 입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상처 입은 마음을 단번에 관통할 능력이 없다. 또한 그렇게 상처가 아문 사람만이 마음이 상하고 찢긴 타인을 품을 수 있다.

이 책을 들고 내 안의 상처를 꺼냈다. 대충 뭉뚱그려 놓았던 상처들을 풀어놓고 보니 아픔의 얼굴들이 제각각 어찌나 다르던지. 울다가 웃다가 쓰다듬다가.. 슬쩍 눈길을 돌렸더니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저마다 애면글면 살고 있는 모습들이 짠하기만 하다.

상처가 보석이 되고 향기가 될 수 있다는데 내가 거기까지 닿을 수 있을까. 그냥 책에 담긴 시를 오래도록 사랑하고 함께 뒹굴 생각이다. 처방전을 잊지 않고 꼭 챙겨 먹는 착한 환자도 되고 싶다. 길을 걷다가 나처럼 상처가 있는 얼굴을 만나면 손을 잡고 집으로 데려올 거다. 그리곤 이 책을 부지런히 뒤적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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