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그동안 누구를 만났든 이토록 까칠한 남자는 처음일 것이다!」라니. 웬만하면 마주치기 싫은 이웃이라.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입을 꼭 다물고 있는 표지를 보니 얼추 짐작은 가지만 도대체 얼마나 까칠하길래..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오베라는 남자》(프레드릭 배크만 글, 최민우 옮김, 다산책방)는 그 이상을 보여준다.

컴퓨터를 파는 매장에서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첫 장면부터 망할 영감탱이다. 그는 매일 정확한 시간에 동네를 시찰하면서 공공기물을 파손한 흔적을 찾는다. 주차 구역을 벗어난 차 주인에게 일일이 전화를 하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엉망으로 한 주민에게 쓴소리를 날린다.

사람들은 그에게 ‘사회성이 없다’라고 하지만 그가 생각하기에 사람들은 종종 제정신이 아니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게 있다면 바로 자기를 속이려 드는 것. ‘꽃다발 두 개에 50크로나’라는 쿠폰을 들고 있다면 한 개를 사도 당연히 25크로나에 팔아야 한다고 여긴다.

그가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유는 뭘까?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일에 반대를 했더라도 일단 그 일이 결정되면 지켜져야 하고, 누군가는 그게 제대로 이뤄졌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 뿐인가. 한 번 마음을 줬으면 사람이든 물건이든 쉽게 그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한 세기의 3분의 1을 한 직장에서 보낸 것도, 아버지 때부터 타던 자동차 회사를 꾸준히 이용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니 그의 눈에 기분이 내킬 때마다 직장을 옮기고 아내를 갈아치우며 조깅을 할 때 루마니아 체조 선수처럼 입고 나오는 허세들이 좋게 보일 리 없다.

이 남자, 까칠한 게 아니라 멋진 남자구나. 책을 집어던지고 싶던 마음이 스르르 풀린다. 그런데 남들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자신의 생각대로 씩씩하게 걸었던 그가 휘청거린다. 그리곤 매일매일 죽고 싶어 환장한 남자가 된다. 반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가 사무치게 그립기 때문이라나. 죽으려는 이유까지 멋지다니!

사람들은 그가 어렸을 때부터 미친 영감이었을 거라고 말하지만 아내에게 그는 정의와 페어플레이, 근면한 노동과 옳은 것이 옳은 것이 되어야 하는 세계를 확고하게 믿는 남자였다.

그녀 앞에선 누구는 추상적인 것을 좋아하고 누구는 스스로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을 좋아해서 안 된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한 사람은 세상을 흑백으로 보고, 다른 한 사람은 다양한 색깔로 보기 때문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도 그저 핑계일 뿐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요.”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다. 누구나 새 집과 새 물건을 아낀다. 하지만 진정한 아낌은 빛이 바래고 갈라져도 끝까지 그 마음을 놓지 않는 것.

“엄마가 할아버지 ‘배거푸’대써요.” 마음에 사랑이 넘치는 사람만이 그 사랑을 잃은 사람의 허기를 알아본다. 그는 성질이 더러워서 까칠한 게 아니라 사랑했기 때문에 까칠했다. 사람과 세상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 그게 오베다.

그래서 59살인 이 남자의 외침에 마음이 활짝 열린다. 사랑할 수 있을 때, 미치도록 사랑하자. 사랑이 없는 사람은, 그런 삶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황영주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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