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봉 장애인기업협회 안산시 지회장

어릴적 왼쪽 다리 3급 장애판정을 받고 한때 주변 사람들로 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았지만, 그것은 단단한 인생을 훈련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모든게 '희망'라는 단어를 되뇌이며 살아온 날이 대부분이었다고 밝힌 그는 인터뷰중에도 연신 미소를 잃지 않았다. 장동봉 지회장이 사무실 입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최제영 大記者

어릴적 왼쪽 다리 3급 장애판정을 받고 한때 주변 사람들로 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았지만, 그것은 단단한 인생을 훈련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모든게 '희망'라는 단어를 되뇌이며 살아온 날이 대부분이었다고 밝힌 그는 인터뷰중에도 연신 미소를 잃지 않았다. (사)한국장애인기업협회 경기도 안산시 지회를 이끌고 있는 장동봉 지회장의 얘기다. 충남 당진 합덕 출신인 장 회장은 늘 장애인의 창업·창출을 위한 고민이 앞선다고 했다. 불경기가 거듭되고 있는 요즘은 특히나 어려운 처지의 장애인이 걱정된다며 이를 타개할 만한 대책도 마땅치 않아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94세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등 효자로도 소문난 장 지회장은 지난 설명절을 맞아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적셨다고도 했다. 장애인 아들을 키우면서 평생을 살다간 부모님 얼굴이 유난히 그립다고 했다. 사동에 위치한 안산시 장애인지원센터 2층에 있는 장애인기업협회 안산시지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인터뷰했다.

Q장애인기업협회가 어떤 단체인지 궁금하다.

-일부에서 장애를 가진 경제인 협회로 잘못알고 있는 경우가 있다. 장애를 가진 사업가들이 모인 단체가 아니고 장애인들의 창업·창출을 도와주는 단체라고 보면된다. 장애인의 기업활동과 창업을 측면에서 지원해 주고있다. 장애인들이 일반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발전적인 기업문화를 창출하는데 목적이 있다. 창업자금, 운영자금, 기술보증기금 상담과 업무를 지원해주고 있다. 취업상담과 취업을 알선하고 장애인 기업의 실태를 조사하기도 한다. 장애인 공동사업장의 다변화를 추진하고 사회적 기업 인증을 위한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Q어떤 계기로 장애인 단체와 인연을 맺게됐나.

-고향이 충남 당진 합덕이란 곳이다. 어릴적 운동을 하다가 다치는 바람에 왼쪽다리에 관절강직이란 병을 얻었다. 여러병원을 찾아 치료에 온힘을 기울였지만 결국 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걷기가 정상적이지 않아 무척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살림에 부모님이 나를 정상인으로 치료하기 위해 전 재산을 날릴 정도로 정성을 쏟았다. 하지만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한때는 좌절도 했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섬유회사에 입사해 근무하면서 '상무'라는 직책도 맡았다. 이후 '갑 을 병'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나름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몇년만에 회사가 어렵게 되면서 파산을 하는 곡절을 겪었다. 그후 2001년 (사)한국장애인기업협회 중앙회 기획부장으로 입사하면서 장애인 단체와 인연을 맺게됐다.

장동봉 지회장이 생활형편이 어려운 장애우들에게 사랑의 쌀을 전달하고 있다.

Q장애인 단체 행정 업무가 적성에 맞나.

-그렇다. 평소 성격이 치밀하고 확실한 편이다. 장애인기업협회 입사전에 장애인단체 총연합회 사무총장으로 일을 했는데 자랑같지만 인정을 받았다. 2004년에 한국장애인기업협회 안산지회장을 맡으면서 안산과 인연을 맺었다. 장애인기업협회 중앙회 환경재생사업본부 본부장을 비롯해 한국장애경제인협회 경기도지회 감사로 일도 하는 등 나름 장애인단체의 업무를 꿰뚫는 업무를 맡아왔다. 그런 탓인지 안산에 와서도 길지않은 시간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경기도지부 수석 부회장직도 맡고 있는데 책임감도 동시에 느끼고 있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고 싶다.

Q안산에서 장애인 단체 활동은 어떠했나.

-매년 하기수련회를 통해 장애인들의 단합과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월에 생활이 어려운 장애인에게 20kg짜리 쌀 40포를 전달하면서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수시로 담요나 가습기 등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전달하고 있다. 이런 물품들을 후원하는 업체가 종종 있다. 따뜻한 마음을 간직한 기업인들이 아직 우리 주변에 있어 항상 훈훈함을 간직하고 있다.

Q실제로 수익창출은 무엇이 있나.

-장애인기업협회 지회 사무실에서 3명의 장애인 등이 일을 하고있다. 보험회사 판축물을 포장하는 업무를 하고 있는데 나름 수익을 올리고 있다. 시에서 운영비를 지원해주고 있지만 대부분 사무보조원 급여로 지출되고 있어 부족함이 있다. 현실적으로 예산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안산에 12개의 장애인단체가 있는데 이중에 10개 단체가 안산시장애인지원센터에 입주해 있다. 다행이 사무실을 무상으로 제공받고 있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하지만 공간이 너무 좁아 사무실 용도외에 작업장으로 쓸수 없는 단점이 있다. 안산시에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장애인기업협회가 주관한 하계수련회에서 장애우들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Q장애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장애인들도 시대에 맞춰 전향적으로 인식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좀더 노력하고 힘을 내서 비장애인들 과 떳떳하게 경쟁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윤택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장애인들 중에는 훌륭한 언론인을 비롯해 정치인, 학자, 법조인, 공무원 등이 수없이 많다. 그들은 장애인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노력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일반인 못지않게 성공할 수 있는 여건이 있다는 말이다. 나름대로 독특한 소질과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살리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 개개인의 능력을 찾아내 발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요즘은 교통사고 등 후천적으로 장애를 입고 사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장애인이 부끄럽거나 창피한 일도 아닌 세상이 됐다.

Q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 기억되는 일은 무엇이 있는가.

-수없는 보람을 느끼고 있다. 장애인 단체장으로서 보람도 있고 애환도 있다. 1993년으로 기억되는데 상도동 이화약국 뒤에서 43평짜리 고급주택에서 살때가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자택과 가까이 있었다. 그때 김영삼 전 대통령과 가끔씩 만나는 기회도 접했다. 그분이 대통령이 되고나서 청와대도 가본 적이 있다. 그덕에 용인 숙대 연수원에서 장애인 성공사례 특강도 하는 영광을 안았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되고있다. 부모님은 장애가 된 아들을 보면서 늘 가슴아파했다. 모두 당신들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살아오셨다. 어머님은 86세에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94세에 세상을 뜨셨는데 나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가 중풍으로 6년간 고생했는데 내가 나름 돌봐드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6년후에 아버지가 세상을 뜨셨다. 눈을 감는 날까지 나를 위해 간절히 기도를 하셨다. 효자상도 받았지만 자식이 부모에게 뒷바라지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설 명절에는 유난히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다.

Q마지막으로 한마디 해달라.

-당진 합덕이란 곳은 들판이 있는 평야지대다. 고향이 그리울때가 많다. 안산에 오기 전 서울 화곡동에서 살았는데 지하실 방이었다. 그러나 행복하게 살았다. 돈이 있으면 편할지 모르지만 행복의 조건은 되지 못한다. 한때 유흥업소를 대상으로 대리운전도 해봤고 포장마차도 경험을 했다. 풍요롭지 못했지만 무리한 욕심을 내지는 않았다. 얼마전 내가 죽으면 쓸만한 장기를 다른 사람을 살리는데 사용해 달라고 장기 기증 서약도 했다. 내가 죽으로 화장을 해서 강원도 넓고 푸른 바다에 뿌려 달라고 유언도 했다. 인생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산다. 살아 있을때 최선을 다하며 살고 싶다. 남을 위해 봉사하고 특히나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다. 그들이 미소를 지으면 내 자신이 행복하다. 장애인이 잘살고 편안하면 그만이다. 장애인기업협회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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