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절대로 일어날 리 없다고 믿었던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면?’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수 클리볼드, 반비)는 어느 날 갑자기 어둠 속으로 떨어진 엄마가 그럼에도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그 어둠을 통과해 나간 가슴 먹먹한 고백이다.

그녀의 아들인 딜런 클리볼드는 친구인 에릭 해리스와 함께 총과 폭탄으로 무장하고 콜럼바인고등학교에 갔다. 두 사람은 학생 열두 명과 교사 한 명을 살해하고 스물네 명에게 부상을 입힌 다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역사상 최악의 학교 총기 난사 사건으로 1999년 4월 20일에 일어난 일이다.

아이의 결함이 드러나면 사람들은 으레 부모를 비난해 왔다. 딜런의 부모도 예외는 아니다. 사실은 왜곡되고 부풀려져 온 가족을 사정없이 난도질한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그녀는 문제 있는 엄마가 아니었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 멀찍이 떨어져 보는 사람의 생각이 이런데 직접 아이를 키운 엄마는 얼마나 안타깝고 억울하고 이해하기 어려웠을까.

그녀는 그 날 처음 사랑하는 자식의 낯선 모습을 본다. 그리고 1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아이의 숨겨진 내면을 찾아가는, 아프지만 불가피한 과정을 걷는다. 우리는 그녀와 함께 걸으며 희생자는 열세 명이 아니라 열다섯 명이라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어떤 하루가 한 사람의 삶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드는 게 옳은 일인가.

“한 사람을 죽이는 사람은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죽이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적어도 자기 입장에서는 온 세상을 없앤 것이므로.” G.K.체스터튼의 말이다. 도대체 딜런은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그동안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그녀는 아이의 우울과 자살 충동 징후의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과, 아이가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지 못한 것을 처절하게 자책한다. 그런데 전문가는 부모가 어떻게 해서, 혹은 어떻게 하지 않아서 그가 그 행동을 하게 된 것은 아니라고 위로했다.

양육이란 한 사람이 접하는 모든 환경적 요소를 의미하므로 교사나 친구들은 물론 사회 전체가 관심과 배려를 조금씩 기울여야 했다는 의미. 그녀가 비난받을 각오를 하고 이 책을 쓴 이유는 정말 자식을 사랑한다면, 진정 그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면 좋은 사회를 만드는 길이 최선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그녀는 지금도 날마다 딜런과 에릭이 죽인 사람들과 그들이 느꼈을 공포와 고통을 생각한다고 했다. 단 하루도 격한 죄책감에 휩싸이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없으며, 자신의 아들 때문에 망가지거나 스러진 삶을 기리고 살려고 애쓴다고 했다.

내가 이 사건을 접했을 때 무슨 말을 했던가. 분명히 부모를 욕했을 거다. 크고 작은 폭력 사건을 접하면 습관처럼 내뱉는 말이니까. 그런데 앞으로는 그러지 못할 것 같다. 그녀의 고백 끝에 매달린, 아들을 향한 사랑을 봤고 같이 껴안았으니.

매일 보는 내가 낯설고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들을 다스리지 못할 때가 많은데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을 이렇다 저렇다 단정 지었다니 창피하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는 걸 기억하고 겸손해야겠다. 나이를 먹어도 좀처럼 늘지 않는 지혜가 언제쯤 내 것이려나.

수필가/한우리독서토론논술 원장 황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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