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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어떻게 읽을까, 글을 어떻게 쓸까
반월신문 | 승인 2019.01.23 11:27

어린 눈에 보이는 고모는 참 못된 사람이었다. 삼대독자인 아버지와 결혼을 한 엄마는 내리 딸만 넷을 낳았고, 친할머니를 등에 업은 고모의 말과 행동은 자주 도를 지나쳤다. 다른 여자를 집으로 데려오는가 하면 거절하는 아버지의 멱살을 잡기 위해 늦은 밤 담장을 넘기도 했다.

그런 고모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 목사님과 신도들 앞에서 짓던 고모의 상냥한 표정과 웃음. 종교가 문제가 아니라 종교를 믿는 사람이 문제라는 사실을 이해하고도 종교 단체로 향하던 나의 발걸음은 자주 멈칫거렸다. 종교를 몰랐을 때 고모는 그 종교였으므로, 고모는 그 사실을 알고 어느 정도 책임감을 가져야 했던 거다.

책을 즐겨 읽는 사람과 글을 쓰는 사람에 대한 기대치도 같았으니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이 그냥 나왔을 리 없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므로 그런 책을 읽거나 쓰는 사람은 마음이 건강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을 거라 믿어 왔다.

그런데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든 다 비슷하더라. 그 이유를 몰라 답답했던 마음이 《독서, 심리학을 만나다》(남상철 저, 마음동네)를 읽고 풀어졌다. 저자는 기존의 독서가 ‘똑똑하지만 악한’ 인간의 출현을 막지 못한 까닭이 오로지 자신의 성공을 위해 독서를 이용했기 때문이란다.

히틀러는 정치, 군사, 예술, 성경을 비롯해 점성술이나 심령술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섭렵하면서 자신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시키는데 필요한 이론적 기반을 닦았다. 나아가 전쟁을 합리화하기 위해 막스 리델의 “역사를 바꾸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평범한 인간들의 합리적 사고를 뛰어넘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는 독서를 통해 뛰어난 지적 능력과 명석함을 얻었지만 동시에 독서를 자신의 왜곡된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살해하는 악행을 저질렀고, 이런 경우 독서는 안타깝게도 약이 아니라 독이다.

앞으로의 독서가 자아실현을 추구하되 타인과의 공존을 소중하게 여기도록 안내해야 한다는 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책만 읽을 게 아니라 세상도 부지런히 읽고, 책이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 경험이 사람을 만든다는 생각을 하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닦으라는 충고도 고맙게 받아들인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니 두려웠다. 내가 그랬듯이 누군가 나에게 어떤 기대치를 갖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글 쓰는 사람은 글로 말을 건넨다. 내가 글을 써서 누군가 읽으면 내가 그 사람에게 가는 것과 같다. 말과 글, 행동이 다르지 않은 사람이 평소 내가 지향하는 글 쓰는 사람이었는데 어째 자꾸 샛길로 가려고 몸을 비틀지 뭔가.

번잡했던 한 해를 정리하며 내가 듣거나 했던 말들을 씻는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 싶다. 그래야 내 안에서 나오는 말과 글을 사랑할 수 있을 테니까.

옷을 벗듯 말을 벗어 / 몸을 씻듯 말을 씻는다 / 하루를 걷으면 / 허랑하게 걷돌거나 / 탈탈 털어내고픈 / 말 한 줌 잡히니 / 사람을 손으로만 만지랴 / 마음이 곧 말이니, 말을 씻는 일 / 나를 다시 빚는 일이다 / 말갛게 헹궈 / 볕살 담뿍 담으면 / 내일은 마음껏 내어 줘도 좋으리 (말을 씻는 시간, 황영주)

황영주 안산문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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