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한 만큼 대우 받고·직원들 인격 짓밟는 갑질적폐 근절하고

지난해 7월 개원한 제8대 안산시의회가 올해로 첫 새해를 맞는다. 김동규 안산시의회 의장은 지난 1일 화랑유원지 단원각에서 열린 ‘안산 천년의 종 타종식’ 행사에 참석한 자리에서 “새해에는 시민과 함께 신뢰받고 존중받을 수 있는 의회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공직사회에서 안산시의회가 일터로서의 인기를 잃은 상황에서 시민에게 존중받는 의회가 되기에 앞서 의회에 파견된 공무원들을 존중하는 의회로 거듭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직원들, 업무 많고 집행부엔 찍히는데…근평에선 사업소 취급

지난 1일자로 단행된 안산시 인사를 두고 공직사회에서는 ‘전보제한과 전문성을 무시한 조직개편이다’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며 술렁였다. 그러나 의회를 떠나게 된 공무원들만큼은 예외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안산시 복도통신에 따르면 이들은 집행부로 돌아가게 되자 쾌재를 불렀다고 한다. 그만큼 공직사회에서 의회 근무는 업무 강도는 높은데 인정은 못 받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총 38명의 시의회 소속 공무원들의 업무는 21명의 시의원을 보좌하는 일이다. 크게 3개 팀, 4개 전문위원실로 나뉘어 ▲의정활동 홍보 ▲의사 진행 준비 ▲의장 및 부의장 수행 ▲입법 활동 지원 ▲의원 사무실 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때에 따라선 의원 사무실을 수리하거나 회기 중엔 의원들 간식거리까지 챙긴다.

38명이 의회 전체를 커버하려다 보니 업무가 늘 포화상태에 이른다. 회기 중엔 물론이거니와 혹시라도 의회 청사 내부에서 시위가 벌어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자정 넘어서까지 비상 근무를 서기로 한다.

특히 의원들이 입법 활동을 하는 데 있어 법률적인 지원을 하는 각 상임위원회 전문위원들은 조례 발의 보조에서부터 법률 검토, 보고서 작성 등을 모두 도맡아 한다. 국회로 치면 국회입법조사처 활동과 각 국회의원실 소속 보좌관 활동이 혼합된 형식이다. 보통 의회 전문위원들 직급이 지방사무관(과장급)인 것을 고려할 때 같은 직급의 집행부 공무원들은 관리자로 근무하는데 반해 이들은 실무자로서 과중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과중한 업무도 업무지만 집행부로부터 미운털이 박히는 것도 의회 근무가 부담스러운 이유 중 하나이다. 집행부를 견제·감시해야 하는 의원들의 역할을 고려할 때 의원들을 보좌하는 의회 직원들 역시 그 역할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집행부에 미운털이 박히게 되고, 그것이 인사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실제로 인사 때마다 과거 의회 근무 시절 찍힌 공무원들이 승진에서 누락됐다는 소문들이 하나둘 나오곤 한다.

설상가상으로 근무 평가에서 의회 근무 이력이 큰 이점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있다. 전·현직 의회 소속 공무원들에 따르면 현재 안산시의회 근무 이력은 근평에서 양(단원·상록) 구청 근무 이력보다 조금 나은 ‘사업소’ 정도의 평가를 받는다. 집행부와 함께 70만 안산시민의 복리 증진을 담당하는 또 하나의 중심축인 의회가 한낱 집행부 하위 조직 취급을 받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공무원들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대우는 받지 못하는 의회보다는 승진 및 각종 인사고과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는 본청 핵심부서 근무를 선호한다.

이에 대해 안산시의회 한 관계자는 “의회 직원들이 고생한 만큼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의장과 부의장이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8대 안산시의회 의원들과 의회 직원들이 '2018년 종무식'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의원 나리들 갑질에…남몰래 설움 삼키는 직원들

그러나 무엇보다 직원들을 힘들게 하는 건 특권 의식을 가진 일부 의원들의 갑질이다. 의원들을 보좌하는 직원들을 자신들의 종으로 알고 부려먹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과거 의회를 거쳐 갔던 공무원들은 하나같이 “의원들 따까리(자질구레한 심부름을 맡아 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생활이 너무 서러워 의회를 벗어나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고 토로했다.

보통 시의원들은 4년 동안의 의정 생활을 하면서 글을 써야 하는 상황에 종종 처해진다. 회기 중에는 집행부를 상대로 시정질문을 하는가 하면, 가끔 지역 언론에 의정 칼럼을 기고하기도 한다. 또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면 축사를 작성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때마다 일부 의원들은 ‘역량이 안 돼서’ ‘귀찮아서’ 등 갖가지의 사연으로 의회 직원들에게 대필을 맡기곤 한다.

모 의원은 직원들에게 돈을 빌렸다 갚지 않는 갑질을 상습적으로 저질러 직원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의회 내부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 의원은 직원들과 점심을 같이 할 때면 식사 후 커피가 마시고 싶다며 특정 커피전문점으로 직원들을 데리고 간다. 그러고선 ‘지갑을 가져오지 않았다’며 요금을 직원에게 대납하게 하고선 끝내 돈을 갚지 않는다. 해당 관계자는 “이런 일들이 반복되자 나중에는 공무원들이 이 의원과 점심을 할 때면 밥을 먹자마자 도망가기 바쁘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의원은 최근 회기 중 의원들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직원들이 퇴근했다는 이유로 직원들을 크게 나무란 적도 있다.

특히 의원들이 해외 공무 연수를 떠날 때는 의원들의 갑질이 극에 달한다. 최근 경상북도 한 지방의회에서 일부 의원이 해외연수 중 일탈 행위를 벌여 전국적으로 큰 공분을 사고 있는 가운데 전·현직 안산시의회 직원들과 전직 안산시의회 의원들은 ‘안산시의회 의원들도 만만치 않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의원들의 해외 공무 연수 갑질은 공항에서부터 시작된다. 몇 년 전 세계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노룩 패스(No Look Pass)' 갑질처럼 안산시의회 의원들 역시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여행 가방을 공무원들에게 맡긴다고 한다.

특히 이들은 현직인 A의원과 B의원의 갑질은 상상을 뛰어넘는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A의원은 해외 공무 연수를 떠날 때면 직원들에게 밑반찬을 따로 챙겨오도록 지시한다고 한다. B의원은 지난 7대 안산시의회 의원 시절 공무 연수지에서 3일 내내 식사 메뉴로 스테이크가 나왔다는 이유로 ‘한식집을 못 찾았다’며 연수에 동행한 직원들을 나무랐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 전직 안산시의원은 “솔직히 해외 공무 연수 같은 경우에는 직원들이 따라가고 싶어 하는데, A의원과 B의원이 가는 연수에는 직원들이 서로 본인들을 빼달라고 부탁을 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 같은 갑질을 당할 때마다 직원들은 눈물을 삼키며 서러움을 달랜다고 한다. 현재 안산시의회에서 근무하는 직원 C씨는 “갑질이나 당하려고 열심히 공부해서 공무원 된 게 아닌데 일부 의원님들은 직원들을 자기 집 파출부 정도로 취급하는 거 같아 서럽다”라고 토로했다.

다만 최근에는 일부 초선의원들 사이에서 이 같은 갑질 근절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어 직원들 사이에선 ‘그나마 8대 의회가 7대 때보다는 조금 나은 것 같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긴 하다.

지난 12월 20일 열렸던 ‘2018년 의회사무국 송년회’에서 김동규 안산시의회 의장과 김정택 부의장은 ‘직원들을 의원들이 돌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에 인식을 같이하며 “새해에는 직원들이 일하고 싶은 의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38명의 시의회 직원들은 안산시의회를 ‘직원이 존중받는 의회’로 거듭나게 할 그 약속에 작은 기대를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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