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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퇴치성공은 주민·외국인의 합작품"김학래 원곡동 좋은 마을 만들기 위원장
최제영 기자 | 승인 2019.01.09 10:10
쓰레기 천국으로 불리던 원곡동을 산뜻한 마을로 바꾸는데 일등공신한 김학래씨. 그를 인터부하기 위해 만난곳은 단원미술관이었다. 알고보니 그는 문화관광 해설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가 인터뷰를 마치고 카메라 앞에 섰다. 사진=최제영 大記者

쓰레기 천국으로 불리던 원곡동을 산뜻한 마을로 바꾸는데 일등공신한 김학래씨.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만난곳은 단원미술관이었다. 알고보니 그는 문화관광 해설사로 일하고 있었다. 외국어대학교에서 영어를 전공했고 서울 사당동에서 영어학원을 경영하면서 돈을 좀 벌었다고 했다. 직장 동료의 권유로 지난 2003년 안산으로 이사온 그는 이제 안산사람으로 불리는 것이 좋다고 했다. 원곡동에서 청소년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만난 학부형들과 쓰레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결국에는 성공했다. 그 과정이 힘들고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은 보람이라는 두글자를 위안삼으며 살고 있다고 했다. 행정기관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주민과 외국인의 자발적인 노력이 오늘의 원곡동을 있게했다. 원곡동 통장협의회장도 겸하고 있는 그를 만나 성공비결을 꼼꼼히 들어봤다.

Q안산 원곡동과의 인연이 궁금하다.

-직장동료가 안산에 살고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안산에 대한 이미지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2003년도의 얘기다. 가족들도 안산으로 이사가는데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외국어 대학교에서 영어를 전공했고 이후 사당동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했는데 그런대로 성공했다. 따라서 돈도 좀 벌었다.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원곡동으로 이사를 왔는데, 처음에는 막막한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외국인이 많았고 쓰레기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었다. 아무튼 안산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Q안산에서도 학원을 운영했나.

-아니다. 사당동에서 학원을 정리하면서 영어학원은 그만뒀다. 자그마한 건물을 매입해 임대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외국인과의 관계가 이어지면서 자연스레 다문화 환경을 접하게 됐다.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말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외국인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불식하는 계기가 됐다. 청소년 공부방 도우미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6년간 초등학교 2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학습도우미 자원봉사를 하기 시작했다.

Q쓰레기 얘기가 궁금하다.

-2011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당시 원곡동 쓰레가 문제는 너나 할것없이 공감했지만 해결 방법을 몰라 허둥대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원곡동 쓰레기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행정기관의 협조도 한계가 있다는 판단을 했다. 학습도우미 활동을 하면서 인연을 맺은 학부모 연대가 큰 힘이 됐다. 서로 신뢰하는 마음이 우리모두를 움직였다고 보면된다. 직능단체인 통장와 안산YMCA 관계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아 나섰다. 원곡동 25군데에 쓰레기 무단투기 장소를 확인했고 그중에 6군데는 상습적인 투기장소로 파악됐다. 한마디로 구제불능 상태라고 보면 될 정도였다. 2012년부터 학부모 20여명으로 원곡동 마을 위원회를 구성했다.

원곡동 좋은 마을 만들기 회원들이 쓰레기 퇴치운동을 함께 하고 난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Q시민들이 나서는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안산시 공모신청을 통해 연 500만원의 예산을 받아 독립적인 해결방법을 논의했다. 원곡동 마을 위원회에서 하루 4시간씩 쓰레기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하루 4시간씩 활동을 했다. 아침 6시부터 8시까지와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나눠 원곡동 전체를 돌았다. '몸이 움직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각오로 임했다고 보면 된다. 집앞 쓰레기를 직접 치워주고 때로는 음료수를 사주면서 외국인을 설득하고 사정을 했다. 그러면서 범위를 점점 넓혀가는 작전을 짰다.

Q결과는 나타났나.

-주민들의 힘이 하나 둘씩 늘어나면서 행정기관의 관심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외국인을 상대로 쓰레기 버리는 방법을 가르쳐 줬다. 예를 들자면 내집 앞 쓰레기 버리는 습관을 반복적으로 설명해 갔다. 쓰레기 버리는 장소를 표시해주고 하루에 두번씩 우리 회원들이 직접 치워줬다. 뿐만 아니라 집하장도 만들어 주민들을 설득했다. 그런 다음에 일반 쓰레기는 검정봉투를 사용하고 나머지는 종량제 봉투 사용의 규정을 알려줬다. 당시 이 같은 방법의 50% 정도라면 지금은 70%에 육박할 정도로 정착돼 있다. 당시 원곡동은 전단지 살포로 인한 환경 오염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회원들이 전신주 정화작업에 이어 가로등과 신호등에 부착된 전단지도 직접 떼어내는 작업을 했다. 지금생각하면 모두 고마운 분들이다.

Q보람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쓰레기와의 전쟁에서 성공한 사례가 소문이 나면서 보람을 느끼는 일들이 하나 둘씩 생겼다. 원곡동 다문화 파출소에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온적도 있다. 쓰레기 종양제 봉투 판매 실적을 봐도 알수 있다. 2014년 부터 종량제 봉투 판매가 1억원으로 늘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원곡고등학교 담장에 무단으로 부착된 전단지 등을 청소해 준적이 있는데 교장으로 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받은 경우도 있다. 실질적으로 나타나는 수치라 생각한다. 다른 시·군에서 벤치마킹으로 찾아오는 경우도 많아졌다. 10여 자치단체로 기억되고 있다. 김포 월곶면사무소를 찾아가 사례발표도 한 적이 있다.

김학래씨가 쓰레기 성공을 담은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Q튀는 행동 아니냐는 의구심을 받은 적은 없나.

-일부에서 정치하려고 하는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나는 분명히 말하건데 특정 정당 당원도 아닐 뿐 아니라 앞으로도 정치할 생각이 전혀 없다. 원곡동이 깨끗한 동네로 거듭나는데 힘을 보탠 것 자체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지금의 원곡동은 활력이 넘치고 있다. 다른 지역은 불경기 얘기를 하는데 원곡동 만큼은 그렇지 않다. 외국인이 있기 때문이다. 원곡동에 사는것 자체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일부에서 이 동네를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다. 내 자신도 13년간 임대업을 하고 있는데 거의 외국인이 고객이다.

Q문화관광 해설사에 대해 한마디 해달라.

-7년째 해설사로 일하고 있는데 안산을 널리 알리는 일이다. 안산에는 최용신 기념관과 성호 이익 기념관, 대부도 미술관, 어촌민속 박물관 등 가볼만한 장소가 많다. 안산에 모두 23명이 문화관광 해설사로 일하고 있고 나를 포함해 4명이 번갈아 가며 단원미술관을 맡고있다. 앞으로 원곡동을 알리는 문화해설사가 되는게 나의 순수한 꿈이다.

Q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은.

-좋은마을 만들기 활동을 하면서 많은 것을 체험하고 배웠다. 주민이 단합하면 못할게 없다는 경험을 했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원곡동은 다른 지역과 다르다. 경제가 살아있고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외국인은 어찌보면 우리의 보배라고 생각한다. 우리 주민이 역차별 당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제는 공존 공생할수 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주민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달성하려는 일부 세력도 있는데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믿는다. 다시한번 좋은 마을 만들기에 동참한 분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최제영 기자  cjy1010@ians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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