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설렘 주의보가 발효되지 않아. 거리에서 흥겨운 소리가 점차 사라져 가고 있어. 이즈음이면 여기저기서 캐럴 소리가 흘러 넘쳐야 하는 거 아니야? 돈이 무섭긴 하네.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 가라앉은 분위기를 잠시 띄워 올려도 좋을 텐데. 아무래도 저작권료 탓에 점점 더 조용한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아.

그 옛날, 캐럴 소리 없는 크리스마스를 상상이나 해 봤을까. 나도 선물 없는 크리스마스를 상상해 본 적이 없어. 받아 본 적이 없는데도 매번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또다시 선물을 받는 꿈을 꾸곤 했어. ‘산타 할아버지가 한 번쯤은 찾아와 주실 거야.’ 하면서 말이지. 선물이 놓일 머리맡을 상상하면 설레서 잠도 쉽게 오지 않았지. 아침이 될 때까지 열 번도 더 깼을 걸.

설렘이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어. 동네 어귀서부터 들려오는 새벽송이 개 짖는 소리와 함께 우리 집을 다 돌아나가는 시간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기다린 꼬마 앞엔 산타 할아버지는 절대로 나타나지 않았던 거야. 기대감에 눈도 못 뜨고 머리맡을 더듬는 손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어. 조마조마 눈뜬 아침을 엄청난 실망감으로 채웠을 때의 기분을 더 말해 뭐해.

그러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바로 접을 순 없었지. 다음 날까지 온갖 가능성을 열어 두고 기다렸어. 심지어 산타 할아버지가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 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거라며 배달하는 시간까지 계산해 보려고 했어. 모든 기다림이 헛것임이 확실해진 다음에야 꼬마는 속으로 끙끙 앓았어. 이웃집 동생이 산타 할아버지에게 받았다는 선물들을 자랑할 때 부러워하며 다음 해엔 좀 더 착하게 살아서 꼭 선물을 받겠다는 다짐을 했지.

산타 할아버지의 비밀을 알게 되기까지 꽤 여러 번 한 기대는 상처만 남기고 덮어야 했어. 때론 성탄의 기쁨에 취해 부르던 캐럴도 예리한 칼날이 되어 어린 마음을 찌르기도 하더라구. 노래 속 나쁜 애여서 산타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선물을 안 주신 거라고. 작은 가슴을 어느 골짜기에서 인 찬바람이 휙 훑고 지나간 느낌이었어. 그 때나 지금이나 ‘울면 안돼’라는 노래를 가볍게 넘길 수가 없네. ‘성냥팔이 소녀’가 창 너머로 따스한 방안을 들여다보며 차가워져 가는 결말에 감정 이입하며, 크리스마스는 다른 집에만 찾아오는 거라고 훌쩍이기도 했어.

설렘과 실망이 교차되던 며칠 동안의 기억은 여태껏 나를 붙잡고 놓아 주질 않아. 크리스마스 우울증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어. 겨울 초입부터 아이가 뭘 받고 싶어 하는지 세심히 살폈고, 아이가 겁먹고 울어 실패했지만 산타 할아버지를 초대한 적도 있어. 방송에서 산타 없다는 소리가 흘러나올까 봐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아예 텔레비전을 끄기도 했어.

엄청난 노력 덕분에 큰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되도록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굳게 믿었어. 친구들과 산타가 있다, 없다 싸우다가 씩씩대며 집으로 돌아온 큰아이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난, “산타는 믿는 사람한테만 오는 거야.” 하면서 없다는 소리를 못했어, 고맙게도 큰아이는 그 문제를 더 이상 묻지 않았어. 가끔 큰애가 우스갯소리로 자기가 멍청했다고 하지만, 오히려 고마워해. 동심을 지켜주어 고맙다고.

아이는 알까. 아이에게 산타 할아버지를 찾아 주며 나도 같이 치유 받았다는 걸. 어릴 때 파인 상처를 메꿔가며 비로소 크리스마스 시즌을 편안하게 바라보게 됐어. 혼자 상처를 다독이고 건너기엔 겨울은 너무 춥고 길어. 미세먼지 가득 낀 나날들이지만, 올핸 모처럼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려 볼까. 혹시 알아, 그 오래 전 산타 할아버지가 콧노래 부르며 선물 하나 들고 다녀갈지.

심명옥 안산문인협회 재무국장

저작권자 © 반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