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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 주도 다문화 정책이 주민을 떠나게 한다"박천응 안산이주민센터 대표
최제영 기자 | 승인 2018.12.19 09:21
박천응 안산이주민센터 대표는 다문화 1세대 또는 다문화 박사 1호라는 별칭이 따라붙는다. 그럴만도 한게 박 대표만큼 원곡동 이주민 문제를 파악하는 사람은 없다. 벌써 오랜 세월이 그를 다문화 문제를 해결하는 전도사로 만들었다. 박 대표가 인터뷰를 마치고 카메라 앞에 섰다. 사진=최제영 大記者

박천응 안산이주민센터 대표는 다문화 1세대 또는 다문화 박사 1호라는 별칭이 따라붙는다. 그럴만도 한게 박 대표만큼 원곡동 이주민 문제를 파악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오랜 세월이 그를 다문화 문제를 해결사로 만들었다. 그동안 해낸 일이 너무나 많다고 했다. '코시안'이라는 어휘를 만들었고 '국경없는 마을'도 그가 주인공이다. '다문화 가족지원법' 기초에 참여했으며, '국가인권위원회' 설립도 그를 거쳐갔다. 지금은 전국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다문화는 낮선 말이 아니다. 다문화 하면 안산 원곡동이기 때문에 대학 등에서도 연구차 그를 찾아와 자문을 구하고 있다. 관주도의 다문화 정책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게 박 대표의 생각이다. 그런 탓일까 요즘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이주민 노동자도 우리와 함께 살고 동행할 수 밖에 없는 운명체라고 진단했다. 이는 필연적이라고도 했다. 날씨가 부쩍 추워진 지난 14일 그를 만나 인터뷰했다.

Q안산과 인연이 궁금하다.

-그러니까 지난 89년에 안산으로 내려왔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과 함께 살고싶은 욕망이 컸다. 목회자의 길로 들어선 것도 안산이다. 당시 안산에는 다문화가 그리많지 않았다. 선부2동사무소 건너편에 교회를 개척했다. 맞벌이 부부가 많았다. 그래서 공부방을 운영했다. 그야말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들을 돌보고 싶었다. 송진섭 전 시장과의 인연도 그때 시작됐다. 선부 어린이집 3층에 송 전 시장과 '형제청소년 공부방'을 운영한 것이다. 경기도 시범 공부방이었는데, 아이들을 밤 11시까지 돌봐주는 일이었다. 지금은 그 아이들이 35세 정도가 됐다. 가끔 길에서 만나는 경우가 있는데 반갑게 인사한다.

Q외국인을 만난게 언제부터인가.

-92년으로 기억된다. 우연히 원곡동사무소쪽을 지나는데 공중전화에서 통화하던 한 외국인 나를 불렀다. 자신을 도와달라는 수신호를 내보였다. '여기가 어디냐'는 물음이었다. 아마 한국사람과 통화하는 느낌을 받았다. 가는 방향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직장을 찾는 것이었는데 내가 그에게 목적지를 가르쳐 줬다는 얘기다. 그 순간 나는 머리가 '띵'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 외국인은 가는 길을 나에게 물었고 '나는 과연 누구인가'를 성찰하는 계기가 된것이다. 외국인은 길을 물었고 나는 내 인생의 길을 묻는 동기가 부여됐다. 그러면서 이들을 도우면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됐다.

Q처음에는 외국인 인식이 그리 좋지않았다.

-사실 맞는 말이다. 당시만 해도 그랬다. 외국인을 도와달라고 이곳저곳 손을 벌리니 모두 손사래를 쳤다.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궁리한 것이 바로 노동상담소 개설이었다. 94년에 안산노동상담소를 개설했는데 나중에 안산외국인 노동자센터로 변경했다. 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면서 새로운 화두를 꺼낸 것이었다. 당시 머리에 떠오른 것이 바로 '이주 노동자도 주민이다'라는 화두였다. 국경없는 마을의 기초가 된 나의 다문화 철학이었다. 당시 노동상담소에서 산업재해, 임금체불, 구타 등 인권침해를 상담하고 해결하는데 온힘을 기울였다. 당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개최한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라는 집회도 안산의 모토가 됐다.

박천응 안산이주민 대표가 '인종차별 중단하라'는 외침을 통해 다문화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Q다문화 하면 박천응 대표를 떠올리게 하고있다.

-파키스탄에서 한 남성이 한국으로 어학연수왔다가 한국인 여성과 결혼을 했다. 그들은 공장이나 동네에서인정을 받지 못해 힘들어했다. 너무나 힘든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래서 만든게 '국경없는 마을'이다. 97년의 얘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눔의 일터'라는 회보를 만들어 외국인들에 배포했는데 호응이 무척이나 좋았다. 97년에 코리안+아시안을 묶어 '코시안'이라는 용어도 내가 만들었다. 다문화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70여 가정이 모여 '다문화 가족 지원법' 법안을 만든 기초가 됐다.

Q처음 듣는 얘기가 많다.

-국회를 통해 '고용허가제'를 만든 계기도 마찬가지다. 나는 민간단체 대표로 참가해 고용 허가제 기초를 만들었다. 보람으로 여기는 일들이다. 아동교육권 보장도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준비위원으로도 참여했다. 설립위원 8명중 나도 한명이었다. 당시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도 나와 같이 참여한 것이다. 중등학교 불법체류자도 자유롭게 학교에 갈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다. 다문화 관련 전담 공무제나 다문화지원본부의 행정기구 건의도 내가 앞장섰다. 지금 외국인들은 다문화지원본부에서 행정적 편의를 받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나름대로 보람있는 일들이다.

Q원곡동과 백운동 하면 외국인을 생각하게 되는데.

-외국인이 70% 이상 살고 있으니 맞는 말일 것이다. 이곳에는 모두 12개의 은행이 있는데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문을 열고있다. 이런 현상을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엄청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본다. 다문화 생활과 관련된 이 같은 일들을 인정해야 한다. 다른 동네는 은행 점포를 줄이는데 여기는 그와 반대다. 한때 쓰레기 문제에서 부터 외국인의 고성방가 등 심각한 수준이었다. 지금은 거의 찾아 볼수 없는 일들이 되었다.

다문화 이주민들이 국경없는 마을 행사에서 장구를 치며 흥겨워하고 있다.

Q한국인의 피해의식은 없나

-99년부터 외국인과 한국인이 같이사는 운동을 하고있다. 양쪽간의 갈등이 무척 컸다. 지역적인 문제로 부각될 정도였다. 그래서 갈등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해 동사무소에서 토론회도 개개최했다. 외국인을 명예 주민자치위원으로 받아들이고 공동으로 청소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대화를 통해 상대를 이해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낙인찍힌 마을을 사랑받는 동네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일부에서 한국인이 쫒겨난다는 피해 의식을 갖고 있다.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본다. '외국인 보다 한국인이 많이 찾아오는 동네'를 만드는 것이 나의 소망이다. 그래야 이곳이 성공한다.

Q문제는 뭐라고 생각하나.

-관주도 다문화 정책이 지역 주민을 떠나게 하는 주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지역 주민과 이주민이 함께 만들어야 하는데 그와 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원곡동 다문화 거리를 보라. 중첩되고 문어발식의 시설들이 너무 많다. 예산낭비라는 비난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역에 맞게 특화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한국인도 외국인도 떠나지 않게 해야한다. 한국인이 다문화 주체로 나설수 있어야 한다. 다문화특구가 과연 무엇인가. 뭐가 특구라는 얘기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차라리 '국경없는 거리'로 족하다. 특히 안산역을 살려야 하는 숙제도 있다. 지금은 안산역이 변방으로 쫒겨난 느낌이다. 안산역 주변은 과거 수인선과 연계돼 있다. 상징성을 살려야 한다.

Q안산이주민센터의 향후 역할이 궁금하다.

-최근 안산평생교육원을 설립했다. 다문화 자녀들이 미래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드론과 웹툰 등 교육을 시키려고 한다. 국내 사진작가도 참여한다. 3D프린팅 교육도 내년 1월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Q마지막으로 한마디 해달라.

-이제 시민사회단체와 공무원 등이 뜻을 같이해 다문화 정책을 논의할 때가 됐다. 다문화는 이제 돌이킬수 없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지향적 가치를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싯점이라고 본다. 함께 살수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날을 위한 도전을 계속하고 싶다.

최제영 기자  cjy1010@ians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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