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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꽃밭
반월신문 | 승인 2018.12.05 11:41

뜨락에 꽉 찼던 꽃의 계절이 안녕을 고한다. 언 땅을 비집고 피어난 노란 복수초로부터 시작된 뜨락의 향연은 맹추위에 꽃잎을 더 이상 열어 보이지 못하는 국화꽃으로 끝맺음을 한다. 이제 새 봄이 와 시끌시끌한 숨소리 들려올 때까지 뜨락은 긴긴 잠에 빠져들겠지.

식물 가꾸기는 생각보다는 손이 참 많이 간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식물은 햇살과 바람과 물과 사람의 손길, 그 모든 게 박자가 맞아야 최고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기 때문이다. 한여름 어쩌다 하루만 물 안 주면 매정하게 돌아서 버리는 식물, 까칠 그 자체다. 싱싱한 생명을 만나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아침을 내어 주어야 한다. 때론 버거워 그만 둘까 하다가도 빈 땅과 빈 화분만 보면 무엇을 심을까부터 생각하는 거 보면 아무래도 그만 두기는 글렀지 싶다.

나는 왜 이렇게 식물 가꾸기를 좋아하는 걸까? 이유를 가만히 따라가 보면 그 길 끝에 엄마가 서 있다. 엄마는 고된 시골 살림을 하면서도 작은 꽃밭 가꾸기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들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엄마는 펴지지 않는 허리를 하고 다시 앵두나무 아래에 앉아 옹기종기 다음 계절을 심으셨다. 백일홍이나 금잔화를 손에 쥐고 돌아와 꽃밭에 심는 엄마 얼굴엔 계절보다 앞서 빨간 꽃이 피었다.

엄마의 꽃밭에선 계절이 달라질 때마다 새로운 꽃들이 피어났다. 나는 꽃밭 앞에 앉아 엄마가 없는 시간들을 다채로운 빛으로 채워 나갔다. 활짝 피어난 꽃들은 엄마를 대신해 어린 나를 안아 주기도, 놀이 대상이 되어 주기도 했다. 붓꽃을 귀에 걸고 치장하고, 봉숭아꽃 꼬투리를 지그시 눌러 터트리며 난 다양한 꽃들을 만났다. 엄마의 꽃밭에선 심지어 한겨울 앵두나무 위에 앉은 하얀 눈마저도 내겐 꽃처럼 보였다.

'엄만 왜 그렇게 꽃이 좋았어?' 흙을 매만지며 가끔 혼자 묻는다. 엄마는 많은 일들을 어떻게 그렇게 힘든 내색 없이 해내셨을까. 나는, 종종대는 내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는 딸들에게 화를 내게 되던데, 엄마는 늘 환히 웃기만 했다. 내가 엄마 딸이었을 때, 지금의 내 딸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언제나 공부를 핑계로 집안일을 도외시하면서도 서운한 일 있으면 아침밥을 안 먹고 등교하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하루 종일 일에 지친 몸을 이끌고 엄마는 빵과 구운 쥐치를 사들고 교실 밖에서 서성였다. 무거운 책가방을 머리에 이고 나란히 집으로 돌아오며 나를 걱정하던 엄마는, 당신이 꽃밭에 심은 노란 달맞이꽃으로 다시 피어났다.

어쩌면 엄마는 꽃밭에 꽃만 심은 게 아니라, 인내와 사랑을 함께 심었는지 모른다. 나 또한 바닥에 떨어트린 유리구슬만큼이나 일상이 흐트러질 때 뜨락으로 달려 나간다. 뜨락에 있는 경건한 시간만큼은 수북이 쌓여 있는 할 일들을 잊어버린다. 잠시 숨을 쉬고 싶을 때, 흙을 만지러 나가는 나의 모습은 엄마 모습을 참 많이 닮아 있다.

아주 오래 전, 앵두나무 아래서 꽃들과 놀던 꼬마가 지금의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그러고 보니, 엄마는 그 때나 지금이나 내 마음에 꽃을 심고 계시나 보다. 예전엔 엄마 대신 놀아 줄 꽃을 심어 주었다면, 지금은 일상을 건너는 꽃을 심어 주고 있다. 아무리 바쁜 일상도 꽃처럼 환하게,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게 해 주는 꽃밭. 여든한 살의 나이에도 꽃만 보면 소녀처럼 활짝 웃는 나의 엄마, 그 골진 미소 속에서도 꽃은 여전히 피어나고 있다.

새 봄이 올 때까지 꽃들의 아름다운 다툼을 잠시 빈 나뭇가지에 걸어둔다. ‘규중칠우쟁론기’ 속 바느질 도구들의 자랑만큼이나 수런거리던 꽃들의 모습이 또렷하다. 엄마의 꽃밭이 기억 속에 있는 한 뜨락으로 향한 나의 구애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꽃잎 하나마저도 내겐 시처럼 다가오는지도.

심명옥 안산문인협회 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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