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적 꿈은 좋아하는 책을 질리도록 볼 수 있는 책방 주인이었다. 물론 우아하게 앉아서 책장을 넘기는 일은 드물고, 책을 정리하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오지 않는 고객을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라는 사실을 알기 전의 얘기다.

그래도 늘 동네 책방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오늘 ‘책방이 살면 지역도 산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여러 가지 소식을 접했다. 하나는 지금도 여전히 동네 책방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 평소에는 동네 책방을 즐겨 찾다가도 막상 책을 구입할 때는 대형서점이나 인터넷을 이용하는 고객 때문이란다.

책방지기들은 그동안 적자를 메우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책방을 예쁘게 꾸미거나 북스테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카페를 겸하거나 심지어 자수부터 영어 강좌까지 개설해 봤다. 그럼에도 눈에 띄는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고백이 아프다.

그럼 그들이 내린 결론은 무엇일까. 오직 책에 집중하는 것. 우선 ‘북 큐레이터’에서 해답을 찾았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책들 속에서 독자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막막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꼭 권하고 싶거나 널리 읽히고 싶은 책을 책방지기의 이름을 걸고 건넸더니 만족도가 높았다고.

그 다음 대안은 ‘대화와 소통’. 40대~50대 고객 중에 ‘요즘 많이 외로우니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을 추천해 달라’는 요구가 많아진 것을 기억한 거다. 그래서 고객들이 서로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도록 동네 사랑방 역할을 했더니 단골이 부쩍 늘었다고 했다.

기사를 읽은 후 책장에 꽂힌 《섬에 있는 서점》(개브리엘 제빈 글, 엄일녀 옮김, 루페)을 꺼냈다. 빨간 표지가 단박에 마음을 사로잡은 책. 유쾌하고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몽글몽글 쏟아진다고 웃은 기억이 난다.

책방 주인은 아내를 잃고 혼자 서점을 운영하는 까칠한 30대. 그는 작가를 배웅해 주려다 사고로 목숨을 잃은 아내를 잊지 못한다. 주인이 술에 젖어 사는 데 서점 운영이 제대로 될 리 있나.

그런데 누군가 선물처럼 두 살 여자아이를 서점 문 앞에 두고 간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란다는 아이 엄마의 부탁이 그의 마음을 움직이고,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둔 엄마들이 고마운 참견을 시작하면서 기적이 일어난다.

조금씩 육아를 다룬 책과 그림책이 책장을 채우고,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 생기면서 서점은 섬에서 꼭 필요한 곳이 된다. ‘인간은 섬이 아니다. 한 권의 책은 하나의 세상이다.’라는 책 속 문장처럼 책방이 서로를 이어주는 통로가 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공유되는 공간으로 거듭나길 바라는 저자의 마법이 느껴지는 책이다.

책을 다시 꽂고 내가 사는 안산시를 돌아봤다. 도서관이 참 많다는 게 처음 든 생각. 25개동에 작은 도서관까지 모두 28곳의 도서관이 있다. 참 고맙고 자랑스러운 일. 그럼 동네 책방은 얼마나 있더라.. 잘 모르겠다. 각각 제 역할이 있는 만큼 공공 도서관과 동네 책방이 공존했으면 좋겠다.

우리에겐 꽃이 핀다고, 낙엽비가 내린다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찾아갈 수 있는 동네 책방이 필요하니까. 빨간색 문을 열고 들어서서 주인이 건네는 책을 받아들고 싶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이물 없는 얼굴을 갖고 싶다.

황영주 안산문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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