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8.12.14 금 17:31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세상사는 法
악의 평범성(Benality of Evil)
반월신문 | 승인 2018.11.21 11:26

‘악의 평범성(Benality of Evil)’이라는 말이 있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dichmann in Jerusalem)」에 나오는 말이다.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행하는 일이 악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홀로코스트(Holocaust) 같이 끔찍한 인류사적 범죄가 사이코패스나 악마적인 인물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악인으로는 인식되지 않는 인물이 태연하게, 일상적으로 악(惡)을 저지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아이히만은 독일 나치 시절의 중령으로, 수백만명의 유대인들을 학살한 홀로코스트 계획의 실무를 책임졌던 인물이다. 독일이 2차 대전에서 패망한 후 아이히만은 체포되어 1961년 4월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공개재판을 받았다. 사람들은 아이히만이 아주 사악하거나 미치광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백만에 이르는 살상을 자행한 인물이라고 하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그러나 공개재판을 지켜본 사람들은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아이히만은 평범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아이히만은 당시 재판에서 “나는 나의 상관이 시키는대로만 했을 뿐이다. 상부의 지시를 성실히 수행한 것이 어떻게 죄가 될 수 있는가”라고 변론했다.

상부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는 아이히만의 변명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 상부의 지시가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면 거부해야한다. 다만, 아이히만의 예루살렘 재판을 통해 생각해볼 점이 있다. 사실상 악(惡)이라는 것이 어떤 사회나 집단의 분위기에 의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집단의 가치가 우선시되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 비판적인 사고는 억압된다. 집단의 지배적 가치에 순응하는 개인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개인은 소위 왕따를 당한다. 결국 이런 사회의 구성원들은 살아남기 위해 판단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런 사회가 악(惡)을 향해 나아가는 경우,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구성원들은 사회의 악(惡)에 동참하게 된다.

최근 우리 법원과 관련한 뉴스가 많다. 사법부가 정부와 재판거래를 했다고 의심받는, 소위 사법농단 사건이다. 전 법원행정처장이 구속되고, 수많은 판사들, 법원 관료들이 수사를 받았다. 전 대법관들이 줄줄이 포토라인에 서고 있다.

그 과정에서 눈길을 끄는 한 멘트가 있었다. “법관으로 있는 동안 사심 없이 일했다.” 이것을 보는 순간, 상부의 지시를 성실히 수행했을 뿐이라는 아이히만의 변론이 오버랩 되었다. 그들은 성실히 일했을 것이다. 또 평범한 아빠, 남편이자 이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주의, 관료주의의 함정에 빠진 나머지 자신이 행했던 일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들이 기계적으로 행했던 일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와 같은 재판의 당사자, 나아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보았다면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박상우 변호사 parksangwoo85@gmail.com

 

법률사무소 의담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광덕서로 72, 403호(고잔동, 중앙법조빌딩)

블로그 : http://blog.naver.com/parksangwoo85

문의 : 031-8042-2441

반월신문  webmaster@banwol.net

<저작권자 © 반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반월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704-1 대우빌딩 305호 반월신문사  |  Tel 기사제보 : 031)415-5533, 6644  |  팩스 031)415-2237
창간일자 : 1990년 11월 1일  |  발행인 : 홍일호  |  e-mail : webmaster@banwol.net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일호
Copyright © 2008 - 2018 반월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