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은 말했다. 의술, 법률, 사업, 기술, 이 모두 고귀한 일이고 생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이지만, 시, 아름다움, 사랑, 이런 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라고.

시를 좋아하고 즐기고 사랑하지만 새로운 접근 방법에 허기가 졌던 대학원 때 저자의 강의를 들었다. 단순히 시를 분석하고 해체하는 수업이 아니라 가요와 가곡, 그림과 사진, 영화와 광고 등 다양한 재료와 스토리에 시를 버무린 일종의 퓨전 음식 같은 수업. 이 수업을 그대로 담은 책이 《시를 잊은 그대에게》(정재찬 지음, 휴머니스트)다.

이 책은 실제로 한양대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였으며, 저자가 이미 시를 잊었거나 사랑하는 법을 아예 배워 보지도 못한 그리하여 시를 읽고 즐길 권리마저 빼앗긴 젊은이들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떠나가는 것’에 대하여 저자가 어떻게 풀었는지 들여다보자. 우리는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바꾼 문화 대통령 서태지의 그룹 해체와 은퇴 선언, 복귀를 통해서 이형기 시인의 〈낙화〉를 떠올릴 수 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봄 한 철 / 격정을 인내한 /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 분분한 낙화 (…)

봄 한철, 식물이 그 자태를 있는 대로 뽐내는 격정의 나날, 꽃은 피어나고, 그리고 진다. 덧없다 하지 말라. 피었으면 지는 것이 순리니까. 낙화가 없으면 녹음도 없고, 녹음이 없으면 열매도, 씨도, 그리하여 이듬해의 꽃도 없다.

낙화를 탁월하게 묘사한 사람 중에 작가 김훈을 뺄 수 없다. 그가 《자전거 여행》에서 쓴 일부분을 옮긴다.

동백꽃은 해안선을 가득 메우고도 군집으로서의 현란한 힘을 이루지 않는다.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 버린다.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버린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떠나가는 것’의 테이블 위에는 복효근 시인의 〈목련 후기〉나 김춘추 시인의 〈거울 속의 천사〉 혹은 〈강우〉도 놓여 있고, 클로드 모네의 그림 〈양산을 든 여인〉도 곁들여 있다. 그 뿐인가. 영화 〈사랑과 영혼〉도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니 대학 입시 때문에 억지로 시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든, 시를 향유하는 자리에서 소외된 노동하는 청년이든, 시라면 짐짓 모르쇠요 겉으로는 내 나이가 어떠냐 하면서도 눈물 훔치는 중년의 어버이든, 이 땅의 모든 그대와 나누고파 책을 펴냈다는 저자의 마음을 알고 짐짓 시에 빠져 볼 일이다. 시를 읽으면 비가 오는 날에도 별을 볼 수 있으니 이 책을 그 별을 찾는 통로로 삼으면 어떨까.

황영주 안산문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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