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주 한반도문인협회 회장(본오초 교장)

권태주 본오초등학교 교장은 한반도문인협회 회장 취임식을 앞두고 무척 바빠보였다. 외국은 물론이고 지방에서까지 달려온 내빈맞을 준비에 더 그렇다고 했다.

권태주 본오초등학교 교장은 제2대 한반도문인협회 회장 취임식을 앞두고 무척 바빴다. 외국은 물론이고 지방에서까지 달려온 내빈맞을 준비에 더 그렇다고 했다. 이날은 한반도문학 출판기념회(4집)와 제3회 문학상 시상식도 함께 열린다고 했다. 한반도문인협회는 말 그대로 남북 문인들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교류하는게 목적이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 여러 경로를 통해 노력하는 중이고 조만간 결실이 있을거라고 했다. 이인섭 초대 문화체육부 장관 등이 곁에서 도와주고 힘이되어 준다고 그는 말했다. 통일문학에서 출발한 이 문인단체가 한·중문화예술콘텐츠협회를 거쳐 이제 의젓한 문인단체로 거듭나게 된다는 권태주 회장은 자신만만해 보였다. 이날 취임식에는 안산문인협회 김영숙 회장 등 문인들이 다수 참석했다. 안산문인협회와 손잡고 초등학교 문예수업 발판을 마련한 그는 글쓰기를 통해 어린 학생들이 문학의 깊이를 되새기고 있다며 흐뭇해 했다. 구체적으로 상록수 백일장 등에서 실력이 입증되고 있다고 만족해 했다. 취임식을 1시간 앞두고 권태주 회장을 만나 여러얘기를 들어봤다.

Q한반도문인협회에 대해 알고싶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남과 북에서 활동하는 문인들을 통틀어 표현한 단체이름이다. 언젠가는 남북이 하나가되어야 하고 그 중심에 문인들도 함께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 협회는 3년전 '통일문학'이라는 단체로 시작돼 뜻을 같이하는 문인들이 뭉쳤다. 그뒤 한·중문화예술콘텐츠협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올해 명칭을 '한반도문인협회'로 바꾼 것이다. 한국 문단을 얘기하자면 '한국문인협회'가 제일 큰 어른격이고 '한국작가회의'라는 단체가 있다. 굳이 따진다면 한국문인협회는 비교적 보수적 색채를 띄고 있고 한국작회의는 진보적 성향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한반도문인협회는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문인단체라고 보면된다. 남북화해와 통일시대를 대비해 우리 문인들도 함께해야 한다고 믿는다.

Q참여하는 단체가 궁금하다.

-전국에서 150여명의 문인들이 한반도문인협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재중동포 문인들과 재한 동포들도 다수가 우리협회 회원으로 왕성한 문학활동을 하고있다. 이 밖에도 일부는 탈북민도 참여해 문학활동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이인섭 초대 문화체육부 장관이 힘을 보태고 있으며 장석영 전 한국언론인협회 부회장도 관심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문효치 한국문인협회 회장과 다수의 대표적 문인들이 우리 단체와 인연을 맺고 교류하고 있다.

Q언제부터 문학에 관심이 있었나.

-공주교대를 다녔다. 그때부터 문학과 인연을 맺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보면된다. 그냥 글쓰기가 즐거웠고 시(詩)가 좋았다. 당시 공주교대 부속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나태주 시인을 만났다. 나와 이름이 같아 서로가 관심을 끌게된 원인이기도 하다. 나태주 선생님을 만나면서 문학에 대한 토론도 이어졌는데 그때가 1986년으로 기억된다. '터시인 동인회'를 결성해 문학활동을 했는데 7명 정도가 참여해 1~10집을 발행하는 성과를 얻었다. 나중에는 한국교원대 대학원에서 지금의 성기조 박사를 만났다. 성 교수님을 통해 현대시 지도를 받았다. 그 당시 지도 교수였기 때문이다.

권태주 한반도문인협회 회장이 부인과 함께 내빈석에 앉아 취임식 및 한반도문학 출판기념회와 문학상 시상식 준비를 하고 있다.

Q시인으로 등단은 언제하게 됐나.

-대학시절 문학활동을 한게 큰 계기가 되었다. 글은 쓰면 쓸수록 느는 것 아니겠나. 그러니까 지난 1993년 충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이 공식적으로 됐다고 보면된다. 신춘문예 '누군가 그리우면'이라는 시를 응모했는데 당선되는 행운을 얻으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당시 신춘문예 심사위원장은 박하묵 시인이었는데 감사함을 갖고있다. 이후 1995년에 '시인과 어머니' 라는 첫 시집을 발표했는데 그 시집으로 허 균 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후 시흥문인협회에서 사무국장을 역임하는 등 문협활동도 왕성하게 했다.

Q한때 절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제일 중요한 계기는 '문인들의 무조건 대중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작가 활동을 제한하자는 얘기가 아니고 누구나 문호를 개방함으로서 문인과 걸맞지 않은 사람들이 우후죽순몰려드는 자체가 마음에 들지않았다. 아름다운 글과 맞지않는 행동은 부끄러운 일이다. 최선을 다하는 작가를 욕보이게 한다고 봤다. 절필한 계기는 이 밖에도 개인적인 교직 승진과도 연관이 있었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3년간 대부도 대남초등학교에 근무하면서 승진에도 힘을 쏟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었다. 안산교육지원청에서 장학사로, 이후에는 안산창천초등학교에서 교감으로 근무했다. 2016년 교장으로 승진하면서 좀 마음적인 여유가 생겼고 따라서 그때부터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Q성호 이익선생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들었다.

-성호 이익 선생에 대한 존경심이 높은 편이다. 안산지역 초등학교 3학년 사회과 교과서에 참여했다. 성호 이익선생 콘텐츠 사업단을 만들었는데 예산을 받지 못하면서 어려움을 겪고있다. 여러 시인 등이 참여했는데 현재 성과가 좋은 편은 아니다. 경기문화재단과 안산시의 관심이 필요했는데 아쉽게도 중도에서 표류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김영숙 안산문인협회 회장이 권태주 회장의 취임을 축하하며 축시를 낭송하고 있다.

Q문인들이 초등학교에 문예수업 나간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니까 지난 2016년 본오초등학교 교장으로 발령나면서 부터 나의 숙제라고 생각했다. 사실 안산하면 심훈의 상록수를 떼어놓을 수 없다. 최용신 선생 얘기인데, 원내 본오동 샘골강습소를 시작으로 최용신 선생의 교육은 시작된다. 1939년 사리간이학교가 생기고 현재의 본원초등학교가 원조다. 본원초에서 본오초, 호동초, 상록초, 각골초, 석호초로 이어지는 역사를 갖고 있다. 최용신 선생의 얼을 이어받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게 바로 문예학교다. 2016년 취임초 안산교육지원청이 지원하는 에코문화예술학교 협약을 통해 예산을 지원받고 시작했다. 안산문인협회와 협약을 체결해 1~6학년을 대상으로 문예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호응이 무척좋다. 안산문인협회 회원 20여명이 문예수업 선생님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보람을 느끼고 있는것은 본오초등학교에 이어 고잔 신도시 호원초등학교도 문예수업을 시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Q학생들이 문예수업을 좋아하는지.

-3년째 운영을 하고 있는데 상당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교사가 접근하지 못하는 문학의 깊이를 전달하는데 있어 큰 도움을 받고있다. 표현력 향상이 눈에 띄고 있다. 문학적 감수성도 그렇고 글쓰기에 대한 재미를 느끼고 있다. 안산문인협회에서 주최하는 상록수 백일장이나 별망성 백일장 등에서 구체적으로 실력이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도 이 같은 문예수업은 지속돼야 한다고 믿고있다.

Q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은.

-한반도문인협회가 남·북 문인들의 길잡이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최근 남·북 관계의 훈풍이 문학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자유롭게 교류하고 왕래하는 통로로 자리잡기를 바란다. 조만간에 문학교류의 길이 열릴거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2019년 4월경에 남·북 문인작품집이 발표될 예정이다. 기대해도 좋을 듯 하다. 지난 2017년 두번째 시집 '그리운것들은 모두 한방향만 바라보고 있다'를 출간했다. '천년의 시작' 출판사에서 시집을 냈는데 독자들의 호응이 매우 좋은편이다. 모든 독자분글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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