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인 딸이 뜬금없이 그림책이 꽂혀진 책장 앞을 서성거리더니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손에 들린 책은 《꿈을 먹는 요정》(미하엘 엔데 글, 안네게르트 푹스후버 그림, 시공주니어). 자기가 무서운 꿈을 꿨을 때 내가 읽어 줬다는 말을 덧붙인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단꿈 나라의 단꿈 공주가 무서운 악몽을 꾸자 왕은 해결방법을 찾는다. 하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자 왕이 딸을 위해 직접 여행에 나서고, 온갖 어려움을 이겨낸 끝에 드디어 꿈을 먹는다는 요정을 만난다.

그 요정은 주문을 외우면 찾아와 커다란 입으로 악몽을 먹어 치운다. 단, 필요한 사람이 직접 초대를 해야 한다. 왕은 어렵게 요정의 마음을 얻어 대신 주문을 외운다. 덕분에 단잠을 자게 된 공주. 다른 아이들도 도움이 필요하면 요정을 초대하는 주문을 외우면 된다.

사실 글이 많아서 많이 읽어주지 않은 책이다. 표지가 나달나달 닳은 책들을 놔두고 왜 그 책을 골랐는지 궁금한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어 주면서 딸의 마음이 만져지더라.

공부를 잘하는 아이나 못하는 아이나 큰 시험을 앞 둔 마음은 다 똑같을 것이다. 얼마 전 편안히 누워 잠을 자지 못한다는 투정을 흘렸던 터라 더 마음이 아팠다. 오죽하면 어릴 적에 엄마가 읽어 준 그림책이 생각났을까.

딸은 “좋네.”라는 짧은 한 마디를 남기고는 다시 책상에 머리를 숙였다. 이제는 엄마가 읽어주는 요정의 이야기를 들으며 단잠에 빠질 나이는 훌쩍 지났다. 더구나 그런 주문이 효과가 있을 거라고 믿을 만큼 순진하지도 않다.

그런데 이 엄마는 새삼 그 주문에 마음이 간다. 가장 긴장된 시기에 위로를 받겠다고 꺼낸 카드, 그 카드에 그려진 책 읽는 엄마와 눈이 초롱초롱한 딸. 누구는 수능 백 일 기도를 드린다는데 딸을 위해 요정을 초대하는 게 뭐가 어려울까. 하릴없는 엄마의 마음은 주문이 되어 딸의 작은 어깨를 감싼다.

그리고 한 편으론 내가 책을 읽어 준 엄마라는 게 뿌듯했다. 기분 좋게 떠올릴 추억이 있는 사람은 넘어질 때마다 울지는 않을 것 같다. 마음 안에 단단한 중심이 생겨 쉽게 휘둘리지 않을 테니까.

또 누가 아는가. 나를 닮아서 딸도 책을 읽어 주는 엄마가 될지. 책장을 빼곡히 채운 그림책을 치우지 않길 참 잘했다. 삼대가 조르르 앉아 책에 코를 박고 있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뻐근해진다. 오늘 밤은 요정에게 맡기고 딸도, 나도 편안한 잠을 잘 수 있겠지.

꿈을 먹는 요정아, 꿈을 먹는 요정아!

뿔로 된 작은 칼을 들고 나에게 오렴!

유리로 된 작은 포크를 들고 나에게 오렴!

작은 입을 있는 대로 벌려서

아이들을 괴롭히는 악몽을 얼른 먹어치우렴!

하지만 아름다운 꿈, 좋은 꿈은 내가 꾸게 놔두고!

꿈을 먹는 요정아, 꿈을 먹는 요정아!

내가 너를 초대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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