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어찌 하다 보니 텔레비전 드라마를 챙겨 보지 않고 산 지 꽤 된다. 주위에 드라마 못지않은 삶이 펼쳐져 있고, 책이 드라마에 버금가는 재미를 주어서일까. 이번에 읽은 《사람아 아, 사람아!》(다이허우잉 글, 신영복 옮김, 다섯수레)도 들인 시간이 아깝지 않을 즐거움과 감동을 안겼다.

줄거리는 딱 막장 드라마다. 어릴 적 친구가 결혼을 했는데 남자가 바람을 피운다. 그렇게 남자는 재혼을 하고, 여자는 둘 사이에 태어난 딸과 산다. 한편 그녀를 짝사랑하던 남자가 있었는데, 그녀를 향한 마음을 일기로 남기다가 그 일기장이 공개되자 먼 여행을 떠난다.

긴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난 두 사람. 여자는 어렵게 마음을 열고, 딸도 엄마의 재혼을 바라는 분위기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전 남편이 나타나 용서를 빈다. 딸은 그런 아버지를 용서하고 엄마의 눈치를 보는데 정작 여자는 두 남자 사이에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슬쩍 넘기면 그냥 그런 이 책을 신영복 선생님이 옮겼을 리 없다. 저자는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인간의 삶을 맛있게 버무린다. 단순히 혁명을 비판하는데 머물지 않고 역사가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으며, 그 속에서 인간이 각자 자기 삶의 역사를 쓰면서 공동의 역사를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 기가 막히게 풀어낸다. 그래서 읽는 내내 마음에 가을바람이 분다.

막장 요소를 풀어가는 과정도 격이 다르다. 주인공인 어느 누구도 악다구니를 쓰지 않는다. 책 속에 나온 ‘생활 그 자체가 생활을 위해서 길을 열어 준다.’는 레닌의 말처럼 모순이 인식되면 해결은 가능하다는 공식에 의해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간다.

사방에 널린 막장 드라마를 보고 겪느라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하다. 문화대혁명이 비단 중국에 국한되는 배경에 그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크고 작은 권력을 향해 불나비처럼 달려드는 인간의 욕망과 역사는 반복된다는 큰 줄기에서 바라보라. 현실은 정말 모순덩어리다.

‘인생이란 얻는 것과 잃는 것 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얻는 것을 좋아하고 잃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잃는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잃지 않으면 얻을 수도 없는 법이다. 얻어도 거만하지 않고 잃어도 우울해지지 않는 경지에 달한다는 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님은 물론이다. 우리는 다만 득실을 따지는 기분에 스스로가 좌우되지 않도록 할 따름이다.’

한 줄 또 한 줄, 마음을 움직이는 글에 밑줄을 그으며 마음을 다잡는다. 안으로 바깥으로 한없이 가볍게 살았다는 반성도 곁들인다. 생각해 보니 내가 막장 드라마 그 자체였다. 품격 있는 막장 드라마로 나아가라고 다가오는 이 책을 가만히 껴안는다.

황영주 안산문인협회 사무국장

저작권자 © 반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