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그리운 이를 하늘에 달로, 별로 걸어놓는 이유를 알겠다. 숫자처럼 명확하게, 징소리처럼 깊게 마음에 와 박히는 깨달음에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위로를 받는다.

'마음보다 먼저 눈길이 간 거였구나.’

되돌려 생각하면 훌쩍 지나가버린 2년이다. 지병이 다시 발병되어 딱 두 달 만에 먼 길 떠나시는 시어머니를 배웅하던 길은 아쉬움투성이였다. 마음을 모았다 해도 허둥댔고, 막상 이별을 고하자니 인정해 버리는 것 같아 우물쭈물거렸다. 시어머니를 속수무책으로 보내 드리고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허전함에 시달린다.

시어머니는 내 아픔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분이셨다. 똑같이 많이 아픈 시기를 겪었기에 설명 없이도 내 마음을 매만져 주셨다. 세상에서 이런 종류의 아픔을 공감해 줄 사람이 드문데, 가까운 가족, 특히 시어머니가 나눠 주신 유대감은 마음으로 그대로 와 안겼다. 무뚝뚝하고 시원시원했던 시어머니가 내게만은 다정하고 따뜻했다. 사랑한다는 말도 아끼지 않으셨다.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는 남편이 질투할 만큼이었다. 속으로야 배 아파 낳으신 자식이 먼저였겠지만 내게 주시는 사랑은 언제나 차고 넘쳤다. 그러기에 나 또한 어머니에게 드리는 마음에 거짓이 없었다.

처음부터 어머니와 나 사이가 찰떡궁합인 건 아니었다. 지독한 통과의례를 거쳤다. 결혼하면 무조건 좋은 일만 생길 줄 알았는데,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자존심이 상할 때도 있었고, 친정에 다녀왔다고 걸레를 던지며 빨갛게 상기된 어머니 얼굴을 맞닥뜨릴 때도 있었다. 명절 때는 집에 오는 시누이를 만나고 친정에 가라고 될 수 있으면 오래 잡아 두시기도 했다. 서운함이 컸지만 단지 어머니가 어른이라는 이유 하나로 참아냈다.

딱 7년 걸렸다. 나중에 서운한 마음을 남편에게 풀지라도 어머니 앞에서는 불편한 티를 안 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먼저 마음을 열어 서서히 내게 다가오셨다. 침묵으로 견뎠다지만 그 속이 어디 편할 리 있으랴. 어머니는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어느 순간부터 늘 칭찬을 하셨다. 착하다는 둥, 진국이라는 둥 만날 때마다 좋은 말씀만 주시는데, 당해낼 재간이 없다. 원망의 마음은 무차별 칭찬 세례에 시나브로 무너졌다.

서운했던 일들을 웃으며 돌아보게 되면서 편해졌고, 아픈 날 진심으로 걱정해 주던 모습에 어머니를 완전히 받아들였다. 더구나 나보다 늦게 아팠던 어머니가

“난 이 정도도 힘든데, 넌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니? 미안하구나. 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더 챙길 걸.”

하시며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셨던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어머니에게로 마음이 활짝 열린 순간이다. 아픈 사람은 섣부른 동정엔 마음을 닫지만, 진심을 담은 위로엔 그대로 기대고 싶어한다.

어머니 떠나신 후 맘껏 펼쳐보여 드리지 못한 내 사랑이 아쉽다. 전화 한 통에도 고마워하셨는데, 그 쉬운 일도 제대로 못해 드렸다. 이기적인 마음에 내 편 하나 잃은 허전함도 크다. 나를 품어주시던 넉넉한 품을 떠나 홀로 서는 기분이다.

그래도 분명한 건, 어머니를 추억하는 시간이 따뜻하고 아련하다는 점이다. 어머니의 삶의 지표가 내게서 발현될 때마다 그분의 행동을 따라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제사상 차리는 데 애를 써야 하지만 경건한 마음을 흩트리지 않는 것도 어머니가 남겨 주신 사랑 덕분이 아닐까 싶다. 떠난 다음에도 이렇게 내 마음에 살아 계시니 어머니는 먼 곳에서도 행복하시겠지.

고향 땅에서 시어머니 제사를 모시고 집으로 오는 길, 하늘엔 그믐달이 선명하다. 저문 사랑이 은은하지만 밝게 빛나고 있다. 하늘엔 그믐달이 빛나고, 내 마음엔 그리운 사람이 환하다. 나도 슬쩍 저 달에 마음을 걸어 둔다.

심명옥 안산문인협회 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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