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향기가 물씬 풍기는 시월에는 산사를 찾아가면 좋다. 화사한 코스모스와 서걱대는 억새의 군락이 천지에 만발하는 강산에 오롯이 내 몸과 마음을 맡겨보자. 적막한 산문(山門) 길, 작열하는 태양과 신선한 바람이 가슴을 설레게 할 것이다.

산사에 가면 간혹 스님이 거하는 방 마루기둥에 ‘조고각하(照顧脚下)’라고 써 붙힌 문구를 보게 된다. ‘발 아래를 살피라’는 말이다. 수행자가 신을 가지런히 잘 놓았는지 뒤돌아보라는 의미가 있다. 큰 일을 하더라도 당장 내 앞의 작은 일부터 가지런히 놓아야 한다. 하루의 시작이 정리가 돼있지 않으면 엉망이 되기 십상이다. 무엇이든 출발 시점에서 가지런히 정리돼있으면 일도 잘 되고 기분도 좋은 법이다.

송나라 때 오조(五祖) 법연선사(五祖法演)에게 세 명의 불제자가 있었다. 하루는 선사와 제자들이 일을 마치고 늦은 밤길을 걸어서 돌아오는 중에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그만 손에 들고 있던 등불이 훅 꺼지고 말았다. 칠흙같은 밤에 길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선사가 제자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첫 번째 스님은 “채색 바람이 붉게 물든 노을에 춤춘다.”고 말했다. 둘째 스님은 “쇠 뱀이 옛길을 건너가네”, 세 번째 스님은 “발 밑을 살피라”고 답했다.

어두운 밤이라 자칫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세 번째 스님만이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으로서 ‘조고각하’라고 답한 것이다. 삼불선화(三佛禪話)에 전해오는 이야기다. ‘지금’의 현실 문제를 올바르게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잠시 멈추고 지금 내가 가는 길이 옳지 살펴야 한다. 그래서 스님 고무신 벗어놓은 토방에 가면 조고각하란 글을 종종 보게된다.

무릇 일을 하려면 작은 것 부터 한 단계씩 올라야 한다. 하나씩 차근차근 오르면 시간은 다소 걸릴지라도 결국 더 높은 지점까지 오를 수 있다. 일이 많다고 두세 단계씩 계단을 뛰어 오르면 단시간에 오를 수는 있어도 필시 다리를 헛짚을 가능성이 크다.

작은 변화가 모이면 나중에 큰 반향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작은 일들을 무시하면 안 된다. 일에서 조금씩 성취감을 얻는다면 살면서 부정적 요인들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는데도 유익하다. 청소년들은 작은 성취감에서 큰 성장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큰 것은 작은 것의 반복이어서 작고 소소한 것을 가볍게 어겨서는 안 된다.

조고각하는 우리의 일상을 잘 살피고 돌아보라는 의미다. 우리의 삶을 살피고 돌아보는 것도 어떻게 보면 수행(修行)이다. 수행은 무언가 ‘닦는 것’인데 무엇을 닦는 것일까. 행(行)를 닦는 것이다. 사람의 행위는 불가에서 몸으로 짓는 행, 입으로 짓는 행, 마음으로 짓는 행의 세가지로 설명한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말하고,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행동을 하는가가 나의 본질에 해당한다. 이것을 불가에서 업(業)이라고 한다.

업은 다시 열가지 작은 업들이 나눌 수 있다. 몸으로 짓는 업에는 살생과 도둑질, 삿된 음행이 있고, 입으로 짓는 업에는 거짓말, 아첨, 이간질, 악담이 있다. 그리고 마음으로 짓는 업에는 탐욕, 화냄, 어리석음이 있다. 현세에서 내가 받는 것들은 모두 전생부터 지은 업보의 응보(應報)다. 살아가는 동안 나쁜 업장을 잘 닦아서 악업을 조금씩이라도 털어내야 한다. 이것은 평생을 두고 해야 하는 수행이다.

선한 마음으로 행을 닦으면 열 가지 선업을 얻고, 나쁜 마음으로 행을 일으키면 열 가지 악업이 남는다. 조고각하의 이야기는 우리의 각박한 삶을 잘 살펴서 올바른 길로 가도록 일깨운다. 이제 부터 하루에 한가지씩 선업을 쌓아보자.

만블라선원 주지 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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