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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문인협회 주최 '별망성 백일장' 황규석씨 대상 수상경기도지사상(대상) 태풍을 뚫고 일반부, 황규석(경기도 광주시)
최제영 기자 | 승인 2018.10.10 14:08

결혼 후 두 번째이자 4년만의 처갓집 방문. 나이 마흔에 늦장가를 가서 신혼여행도 가지 못하고 열심히 아둥바둥 살았다. 그래서 늦은 여름휴가를 준비하면서 아내만큼 나도 설레었다. 원룸, 투룸 그리고 반지하 반전세를 거쳐 도시 외곽에 새로 지은 신축 다가구 주택에 드디어 집을 장만했다. 그리고 집장만 후 처음 방문하는 아내의 고향이라 더 의미가 깊었다. 아내의 고생도 많았다. 대만 카오슝이란 곳에서 태권도 사범을 하다 한국에 제자들과 훈련을 와서 날 만났다. 인터넷 친구 만들기 사이트에서 만나 1년을 사귀고 결혼을 했다. 당시 나는 찜질방에서 생활하며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그런 만큼 우리 부부는 많이 힘들었고 남들보다 더 노력을 해서 비록 대출금이 포함됐지만 온전한 우리만의 보금자리를 만들게 되었다. 그래서 더 기뻤고 홍삼이며 김치며 선물도 한가득 준비했다. 그런데 한국의 날씨는 해가 쨍쨍하고 좋았는데 대만의 날씨가 문제였다. 태풍이 대만을 강타한 것이다.

김해공항에 새벽에 도착해 차에서 잠을 조금 청하고 나왔는데 비행기가 뜨지 못했다. 현지 기상이 안 좋아 취소된 것이다. 이런 황당한 경우가 있다니. 아내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항공사 창구를 왔다 갔다 하면서 물어보고 기다리다 대만의 수도 타이페이로 가는 티켓으로 변경해 탑승을 겨우 했다. 비행기 값을 아끼려 김해까지 왔고 카오슝까지 직접 가는 저가항공을 예매했는데 무산이 되었다. 그래도 일단 비행기가 뜨니 다행이었다. 두시간 반을 날아 공항에 도착하는가 싶었는데 바람이 또 엄청 불어와 비행기가 착륙을 못하고 주변을 몇 바퀴 선회하는 것이 아닌가. 흔들리고 덜컹거리고 웬만해서는 놀라지 않는 강심장의 나도 가슴이 철렁거렸다. 한 30분을 배회하던 우리 비행기가 힘들게 지상에 착륙을 했다.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오락가락 하면서 바람이 엄청나게 불었다. 그런데 문제가 또 생겼다. 타이완 북부의 타이페이에서 남부 카오슝으로 가는 고속열차가 역시 태풍과 강풍으로 연착이 되고 출발하지 않았다. 저녁이 가까워 오는 시간 그래도 이 방법밖에 없어 기다리다가 열차를 타고 완행으로 출발을 했다. 방송에서는 계속 태풍피해 소식이 나왔다. 고속기차는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자리도 없어 서서 가는데 선물이 가득 든 여행가방 4개를 메고 또 한참을 낑낑대며 끌고가서 환승까지 하였다. 열차안에 가득 찬 승객들의 열기. 에어컨이 나왔지만 피난 온 듯 가득 찬 승객들과 많은 짐 때문에 사우나처럼 후끈거렸다.

겨우 카오슝역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기진맥진하여 무거운 짐을 끌고 내렸는데 역 앞의 풍경에 난 그만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바람에 따라 춤을 추듯이 장대비가 내렸고 커다란 가로수 고목이 엿가락처럼 쓰러져 도로를 막아 놓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을 내 눈앞에서 보니 더 놀랍고 황망스러웠다. 집사람은 집으로 계속 전화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역 주위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우왕좌왕했다. 간혹 빈 택시가 비상등을 켜고 와서 손님을 태우고 나갔는데 택시를 잡기도 하늘의 별 따기였다.

아! 이렇게 힘들게 처갓집 방문의 하루가 날아가는 것이 너무나 아쉽고 안타까웠다. 얼마 후 그 심한 태풍과 폭풍우를 뚫고 차 한 대가 서서히 다가왔다.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손수 차를 몰고 나온 것이었다. 트렁크와 뒷자리에 가방과 선물을 힘들게 포개 넣고 비에 홀딱 젖은 채 30분을 달려서 드디어 처갓집에 도착을 했다. 새벽 두 시가 다 되었다. 경기도 광주 집에서 출발하여 꼬박 26시간 만에 겨우 도착한 처갓집. 수건으로 사위의 얼굴을 닦아주면 꼬옥 안아준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환한 얼굴에 나도 비로소 웃어 보였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건물 간판이 떨어지고 아름드리 나무가 뿌리 채 뽑히고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넘어지고 부서져 나뒹구는 모습이 보였다. 태풍의 위력이 이렇게 무섭구나 싶었다.

다행히 다음 날 부터는 날씨가 좋아져서 사람들은 복구 작업을 시작했고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갔다. 장모님은 날 위해 산 새우도 쪄 주시고 생선 요리도 해 주셨다. 시간을 내서 망고의 원산지로 여행을 하루 다녀오기도 했다. 검은 모래가 있는 바닷가도 둘러보았다. 커다란 절에 가서 한국의 부모님을 위해 향을 피우고 기도도 해주시고 당신의 사랑스러운 딸과 사위의 건강과 행복을 빌어 주셨다. 그렇게 짧았던 4박5일간의 처갓집 여행은 끝이 났다.

누구보다 늦었고 빈손으로 시작했던 결혼생활. 그것도 외국인과의 결혼은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했다. 지혜롭게 헤쳐 오면서 남편의 방향을 잡아준 아내에게 난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보낸다. 아무리 힘든 고난의 시간이 와도 그것이 강한 비바람과 태풍이라 하여도 언젠가는 지나가고 해가 뜨리라 생각하고 버텨왔다. 태풍을 뚫고 다녀온 3년 전의 처갓집 여행은 더 나은 내일을 꿈꾸게 하고 마음을 잡게 해줬다.

최제영 기자  cjy1010@ians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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