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 연주자 박기형씨는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단순히 대금 연주자로만 생각하고 인터뷰를 계획했지만 알고보니, 생각지 못한 경력이 쏟아져 나왔다. 박 씨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대금 연주자 박기형씨는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단순히 대금 연주자로만 생각하고 인터뷰를 계획했지만 알고보니, 생각지 못한 경력이 쏟아져 나왔다. 전남 진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적부터 음악적인 소질이 대단했다고 고백했다. 어머니는 지역에서 알아주는 판소리꾼이었다. 어머니를 따라 여러 공연에 나섰고 그때마다 여러 상을 독차지했다고 한다. 15살에 혼자서 대금을 배웠고 이는 타고난 재주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유명한 씨름장사였다. 그런탓일까. 박기형씨는 한때 복싱선수로 활동했고 팔씨름에 져본적이 별로 없다고 했다. 스님으로 출가한 그는 법당에 부처님을 모시고 중생을 계도하는 일에도 여념이 없다고 했다. 그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봤다.

 

Q대금은 언제부터 배우기 시작했나.

-결론부터 말하면 15살때였다. 당시 '전설따라 삼천리'라는 라디오 방송을 듣게됐는데 배경음악으로 대금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언가 가슴이 찡하는 느낌을 받았다. 어린 나이였는데도 무언가 끌려 시작한게 대금이다. 여러 환경으로 선생님을 만날 수 없어 PVC 파이프에 구멍을 뚫어 소금을 만들어 독학으로 배웠다. 지금 생각하면 타고난 재주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대금은 스스로 배울수 있는 악기라고 본다.

 

15세 독학으로 시작한 대금 연주는 나의 운명

 

박기형씨가 야외 공연장에서 대금연주를 하고있다.

판소리 어머니 따라 일찍이 흥타령 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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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접공, 권투선수에 이어 스님으로 출가

교도소 위문공연, 안산시 등에 불우이웃 돕기

 

 

Q대금은 어떤 악기이고 스승은 누구인가.

-대나무로 만든 전통 악기라고 보면된다. 한동안 독학으로 대금연주를 했는데, 25살때 서울 이문동에 위치한 국악고등학교에서 대금을 구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연주공부를 했다. 이후에 대금 분야의 이름있는 이정대 대금장을 만나 수업을 받았다. 그분은 대금산조로 알려져 있는 분이다. 대금은 신라시대부터 내려오는 전통악기로서 대나무 쌍골죽으로 형성돼 있다. 예부터 대금을 불면 적병, 역병 즉 '나쁜병이 물러간다'는 말이 전해져온다. 이는 삼국유사 기록에도 나와 있다.

 

Q참으로 의미가 대단한 악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우리 민족은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를 거쳐온 한이 많이 서린 민족이다. 이 같은 한을 풀어줄수 있는게 바로 대금이다. 눈물과 환희 그리고 즐거움을 한꺼번에 접할수 있는 악기라고 자부한다. 튕겨나오는 소리마다 서로 다른 느낌을 주고 있는 것도 흥미로운 면이 있다. 역취는 고음을 말하는데 갈대청 울림이 시원하고 장쾌한 소리를 내면서 듣는이로 하여금 상큼한 맛을 느끼게 한다.

그다음으로는 평취인데, 이 소리는 중간음으로 편안한 소리가 나오고 마지막으로 저취는 저음으로 부드럽고 따사로운 소리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러니 얼마나 좋은 악기인가.

Q과거가 화려하다는 생각을 한다.

-대금을 공부하면서 동시에 여러가지 일을 겸해서 했다. 어머니는 판소리 재주가 있어 어릴적에 여러 공연장에 따라다닌 적이 많다. 대금연주 등이 어머니 피를 이어받았다고 본다.

아버지는 진도에서 유명한 씨름꾼이었다. 일명 장사였는데 대회때 마다 우승을 해서 소 몇마리를 상으로 탄 분이다. 그런 탓인지, 나도 10년 이상 복싱을 했다. 한국화장품 소속으로 선수로 뛴적도 있다. 그리고 용접공으로 일하면서 돈을 벌기도 했다. 극동건설 소속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등 외국에 나가 몇년간 돈을 벌어 집도 샀다.

그런데 운명인지 모르지만 10여년 전 스님이 됐다. 세계불교해동화엄종에 승려로 입적해 지금은 고잔동에 부처님을 모시고 중생계도의 한몫도 하고 있다. 후회는 없다. 자랑같지만 나의 염불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얼마전에는 가수증을 받아 가수로도 활동하고 있으니, 재주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나는 모든 것에 충실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Q대금 음반도 나왔나.

박기형씨가 한 때 권투선수로 활동하던 모습이다.

-지난 2005년에 제1집이 나왔고 이듬해인 2006년에 제2집이 나왔다. 그동안 수만장이 발매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약간의 돈도 벌었다.

부끄럽지만 안산시와 시흥시 등에 불우이웃에 보태라며 약간의 후원금도 내놓았다.

큰 돈은 아니지만 도울수 있어 행복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청주교도소, 여주교도소, 인천교도소 등에 동료들과 위문공연도 가고 있다. 나름대로 보람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재능기부야 말로 의미 그 자체로 본다.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다.

 

Q그동안 활동 사항을 설명해 달라.

-무형문화재 9호 대금장 이수자로서 KBS 국악한마당에 이어 가요무대, VJ특공대 등 방송에 출연한 바 있다. 칠순과 팔순 등 각종 행사에도 참여할뿐 아니라 대금 개인 레슨도 하고 있다.

힘이 있는 날까지 대금연주를 계속할 생각이다. 그동안 보리밥집, 민속주점, 치킨집, 숙녀복, 악세사리, 라이브카페 등 안해본게 없다. 인생은 지금부터라는 각오로 열심히 돈도 벌고 대금도 전수하고 재능도 기부하고 싶다.

 

Q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서양음악에 묻혀 전통악기가 멀어지는게 안타까울 뿐이다. 민족의 혼을 되살리는 대금이야 말로 선조들의 혼을 일깨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같은 일을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싶은 것이다.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대금의 자연소리를 듣다보면, 산란했던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금소리는 신경안정제 노릇을 하는 보약이라고 자신하고 싶다.

 

인터뷰=최제영 大記者 cjy1010@ians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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