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어깨를 빌려줄 때

 

황영주/안산문인협회 사무국장

누가 슬픈가? 모든 사람이 슬프다. 슬픔은 언제라도 나타나 나에게 온다. 《내가 가장 슬플 때》(마이클 로렌 글, 비룡소)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저자가 그 마음을 담아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림책이다. 그림책이라고 우습게 여기지 마시길. 수만 개의 단어도 움직이지 못한 마음을 한 페이지의 그림이 단박에 움직이기도 하니, 세상에는 어른들이 봐도 좋을 그림책이 수두룩하다.

일단 표지를 넘기자마자 활짝 웃고 있는 그가 보인다. 그런데 사실은 슬퍼서 미치겠단다. 아들을 잃어서. 그가 전혀 슬퍼 보이지 않는 건 자기가 슬퍼 보이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봐 행복한 척 하는 거란다.

책 속에서 그는 열심히 슬픔을 해결할 방법을 찾는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숟가락으로 탁자를 탕, 탕 내리치거나 입에 바람을 잔뜩 넣고 푸, 후, 푸 소리를 뱉어 내기도 한다. 슬픔에 대한 글을 쓰기도 하고 창밖을 내다보는 사람들과 사람을 가득 태우고 지나가는 기차 등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슬픔을 막을 궁리도 찾는다.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을 날마다 하나씩 해내고, 그러다가 영 말하기 싫을 때는 자신만의 슬픔에 빠져 버린다. 그 슬픔은 온전히 자신만의 슬픔이니까. 난 이렇듯 슬픔으로 흘러넘치는 책장을 넘기며 당신만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 역시 젊은 날에 아버지를 잃고 가장 아닌 가장이 되었다. 삼오제를 지내고 다시 출근하던 날 얼마나 생각이 많았던지. 사람들이 말을 걸면 울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되나.. 그런데 웬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극히 평범한 하루였다. 처음에는 굉장히 섭섭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그 뜻을 알게 되더라. 그 때의 마음을 담은 시가 「일상의 배려」다.

내 안의 눈물을 다 퍼내고 / 버팀돌이 쑥 빠지니 / 슬픔의 낱말만 꾹꾹 채운 박제가 되었다 / 아버지의 삼우제를 지내고 다시 출근한 날 / 으레 하는 인사를 나누고 / 단골 식당을 찾아 고를 필요 없는 백반을 먹었다 / 종일 손이 기억하는 일을 처리하면서 / 가볍게 주고받는 농담 곁에 서 있었다 / 내 슬픔을 가벼이 여기나 서운했던 / 그 하루 //

나중에야 알았다 / 한 번쯤은 / 소중한 사람을 먼저 보낸 얼굴들이 /슬픔을 슬몃슬몃 털어내라고 / 일상의 사소함을 몽땅 빌렸다는 걸 / 다시 울 수 있었다 / 수많은 낱말들이 팔랑이며 날았다

나만 그렇다는 건 순전한 착각이었다. 미처 보지 못했을 뿐, 누구나 마음 한 칸에 바람 드는 그늘이 있더라. 내가 그닥 친하지 않은 사람을 조문 가서도 눈물이 흘러 겸연쩍었던 건 같은 기억이 있었던 까닭이 아니었는지. 그런 의미에서 가볍게 여길 경험이나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이처럼 우리들의 마음 그릇은 누군가를 안아주고 어깨를 다독일 준비로 찰랑거린다.

이 책의 첫 페이지처럼 웃고 있으나 웃는 게 아닌 누군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또 나란히 앉아 한 페이지, 또 한 페이지를 정성스럽게 읽고 내 어깨를 선뜻 빌려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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