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 초인종 소리와 함께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배달되었다

투명테이프로 봉인된 목소리를 뜯어보니

솜털이 뽀송한 복숭아가 달콤한 향기를 가득 안고

저마다 탈출구를 찾고 있었다

 

수노루 등짝 같은 산비탈, 우리집 과수원

키 작은 아버지의 거친 숨소리가 머무는 곳

반듯한 논 한 뙈기가 없어 늘 허리가 휜 아버지는

복숭아나무를 심겠다고 밤낮으로 산밭에 발목을 묻고

어머니의 물동이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지만

따가운 햇살이 초여름의 대지를 달굴 때면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에도 발그레 화색이 돌았다

쌀보다 더 많은 돈이 열린다며

아버지의 근심은 웃음으로 바뀌었고

조합에서 과수대가 통장에 찍히는 날이면

탁배기 한 사발에 콧노래를 부르시던 아버지

 

저녁밥을 먹고 있는 자취방에 전화벨이 울렸다

오늘쯤이면 택배가 도착했을 거라고 목소리에 힘을 실는 어머니

벌써 복숭아를 따는 계절, 여름이 왔나 보다

좋은 복숭아를 따기 위해 사철 산언덕을 넘던 어머니는

객지 고생이 제일 서럽다며 해마다 첫 복숭아를 따시면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을 내게 보내시지만

어머니는 한 번도 좋은 복숭아를 입에 넣을 줄 몰랐다

나는 이가 없어 무른 게 좋다던 어머니,

올해도 첫 복숭아를 따시며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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