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나가고 싶은 계절, 하늘을 물끄러미 보고만 있어도 엉덩이가 들썩거리니 일단 짐을 싼다. 자유여행이나 패키지여행은 물론 당일치기나 무박도 흔쾌히 받아들이는 건 익숙한 곳에서 벗어난다는 즐거움이 온갖 고생을 감수할 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호화로운 여행을 다녔어도 집에 들어서는 순간 흘러나오는 한 마디, “역시 우리 집이 최고야.”

왜 그럴까.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를 풀어놓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집. 우리는 비록 자신의 집이 남루하고 누추해도 내 집이라 편하게 피로에 지친 몸과 마음을 내어줄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이 더럽고 이루 말할 수 없이 한가롭다는 《보통의 존재》,(이석원 글, 달)에 실린 문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런데 저자는 이 산문집에서 집이 무조건 편하기만 한 곳이냐고 묻는다. 혼자 사는 삶이야 가능하겠지만 결혼으로 이루어진 가족은 모든 사적 영역이 공개, 공유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모른 척도 필요하다고. 예를 들어 드라마나 영화의 여주인공이 샤워 후 하얗고 두툼한 가운을 두르고 머리엔 수건을 말아 올린 채 우아하게 걸어 나오는 장면도 현실이고, 외출을 위해 씻는 과정에서 별로 아름답지 못한 자세를 취하는 것도 현실이라는 거다.

너무 가깝기에 보지 않아야 될 모습도 보게 되니 무조건 모든 과정을 낱낱이 챙겨 볼 필요는 없다, 게다가 밝히고 싶지 않다는 비밀을 굳이 알 필요는 없으니까 그 비밀의 터전을 집으로 삼아서 어울렁 더울렁 가자는 말이다. 사실 우리의 삶이 생략된 부분이 있어서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므로 서로의 사생활은 어느 정도 보장해 주자고 속삭이는 그의 말을 단칼에 거절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그의 깨달음이 그 사생활의 줄타기에서 실패, 이혼한 경험에서 나왔으므로. 「모든 비밀이 없어졌을 때, 상대의 신비로움도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결혼이란 남녀 간 사랑의 합체이기 이전에 사생활과 사생활의 결합이라는 글에 불행했을 그의 결혼생활이 그려져 마음 한 편이 아리다.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모든 과정과 비밀이 안전하게 보호된 채 자신이 드러내도 괜찮다고 승인한 모습만 세상에 보여줄 권리가 있다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그러고 보니 나도 집을 마냥 편하게만 생각하며 살았다. 부부싸움을 벌여 잠시 자신만의 섬에 머물렀던 것도, 사춘기인 딸과 갱년기라는 무기로 살벌하게 마주친 것도 집이 최고라는 든든한 빽 때문은 아니었는지. 이번에 읽은 「보통의 존재」는 그런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어 의미 있다.

집이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곳이어야 마땅하지만 함께 사는 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나 모른 척도 필요하다. 앞으로는 방에 들어가면 무조건 문을 걸어 잠그는 딸을 모른 척 하리라. 당연히 바둑을 두겠지 생각되는 남편의 인터넷 서핑도 눈 감아 주고. 아무데나 흘리고 다니는 핸드폰을 뒤적이는 일도 삼가야겠지.

가족은 가족이고 사생활은 사생활. 연예인도 아닌데 무슨 사생활 타령이냐 지청구 놓지 마시길. 보통 사람도 딱 그만큼의 비밀이 있으므로 궁금하면 오백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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