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사람이 산다는 것 그 자체가 무엇인가를 두고 누군가와 보이지 않는 다툼을 하는 것이다. 그 다툼을 알리는 것이 말과 행동이다. 다툼은 행동을 하기 이전에 말부터 시작한다.

명심보감 정기편에 ‘입과 혀는 화와 근심을 불러일으키는 문이고 몸을 망치는 도끼와 같다‘라고 했다. 입과 혀를 이용하는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다.

사려가 깊고 따스한 배려가 담긴 말을 하는 사람에겐 많은 사람이 따른다. 반면 입만 열면 거친 말과 욕설을 하는 사람은 얼굴을 다시 한 번 처다 보게 된다. 그런 사람 앞에서 호호 하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또한 다르지 않다.

TV를 보다보면 가끔 그런 사람이 나와 거칠고 지저분한 말, 시장잡배만도 못한 말하며 잘 났다고 의시되는 꼴 보인다. 그런 사람 말 듣지도 말고 웃지도 말아야 한다.

요즘 우리 청소년들 거친 언행 함부로 하는 것, 모두 그들을 보고 그들이 하는 언행 따라 한다. 그래야 잘 낳고 똑똑한 줄 안다. 어른들이 그렇게 하니 당연히 해도 되는 줄 안다.

우리 속담에 친구를 보면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훌륭한 사람 곁엔 훌륭한 사람이, 좋지 못한 사람 곁엔 좋지 못한 사람이 득실거린다. 도둑은 도둑끼리 학자는 학자끼리 친구를 한다.

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는다고 했다. 말의 중요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말 가급적 적게 하되 좋지 못한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말이 많으면 반드시 잃은 것이 있다. 한번 뱉은 말, 입 밖으로 나온 말, 주어 담을 수 없다. 말은 가슴속에서 입을 통해 나온다. 잘못된 말은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화살이 되고 비수가 된다. 그래서 말을 적게 하고 아끼는 것이 좋다.

입과 혀로 화와 근심을 불러 오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입과 혀가 화와 근심을 불러 오는 문이 돼서는 안 되고 몸을 망치는 도끼가 돼서도 안 된다.

그런데 요즘 혀끝을 잘 못 놀리는 사람들이 많다. 막말 재미로 하는 것인지, 남들을 웃기자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화를 돋우기 위해서 하는 것인지, 듣는 이의 귀를 의심케 하는 말 함부로 내 뱉는 사람 적지 않다. 특히 지도자라며 무엇 좀 하는 사함들 중에, 재산 좀 갖고 잘 났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 참 많다. 화가 날수록 말을 하지 말라 화 날 때는 감정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다. 가슴속에서 화가 돋아 나온다. 화는 고통과 같다. 화는 미움 시기 절망 두려움이 쌓인 잔재물이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의지 하고 함께 산다. 함께 살면서 꼭 지켜야 할 것 몇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더 더욱 중요한 것이 말이다.

“공자가어”에 공자가 주나라 태조 직후 사당을 방문 할 때 보았다는 금동상이야기가 쓰여 있다. 사당 정문을 들어서면 뜰 우측에 입을 바늘로 세 곳이나 꿔 맨 금동상이 있다. 그리고 그 동상 뒷면에 ‘말을 많이 하지 말라. 무엇이 근심인가를 말 하지 말라. 무엇이 해가 되는지를 말하지 말라. 듣는 자가 없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진실로 말을 삼가 한다면 복 받을 것이다.’ 그렇게 쓰여 있다. 그 동상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말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말을 할 때는 하고자 하는 내용을 잘 생각 신중하게 가급적 적게 하되 거짓말을 하거나 과장해서는 안 된다. 무엇 보다 꼭 필요한 말만 해야 한다. 그것이 성공과도 연관 된다. 인간이 보다 많은 재물을 얻고 보다 높은 직위에 올라 권력을 누린다고 반드시 성공했다고 할 수 없다. 권력과 재물 보다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는 것, 참되게 사는 것, 신의를 잃지 않고 믿음을 받는 것, 그런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요한 말만 해야 한다. 필요한 말도 진솔 하게 해야 한다. 입을 세 바늘씩이나 꿰맨 주나라 태조의 ‘직후’ 사당에 세워진 금 동상의 의미를 생각하며 말을 아끼는 습관이 필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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