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방학 동안 뭐하셨어요?”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막 끝났을 무렵이다.

“책 읽었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알지?”

뭐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니. 그거 중학생 권장도서목록에 있는 거 아니야? 선생님이, 더구나 국어선생님이 이제 읽으셨다고?

“얘들아, 지금 너희가 읽는 그 책엔 스칼렛과 레트, 애쉴리의 사랑만 보일 거야. 하지만 내 나이가 되면 그 안에 담긴 다른 얘기들이 보이거든. 너희도 마흔이 되면 꼭 다시 읽어 봐.”

마흔이 되었을 때 딸이 이 책을 생일선물로 주었다. 딸은 600페이지가 넘는 책 2권에 그 옛날 내가 선생님께 했던 질문을 똑같이 얹었다.

‘나도 사실 그게 궁금해서 다시 읽는 거야.’

평생 연애주의자로 살라는 신의 계시인지, 스칼렛과 레트가 포옹하고 있는 영화 포스터가 기억에 있어선지 여전히 세 사람의 엇갈린 사랑에 눈이 가긴 했다. 그런데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그새 달라져 있지 뭔가. 맹목적으로 애쉴리만 바라보는 스칼렛에게 너를 행복하게 해 줄 남자를 바라보지 말고 너와 나란히 걸어갈 남자에게 손을 내밀라고 말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조분조분 들려주는 이야기에 오래도록 귀를 기울이고 앉아 있는 나를 보는 것도 신기했다. 그 이야기엔 우리 정서에만 있다던 ‘정’도 있었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휩쓸려 가는 안타까운 삶도 있었다. 그들은 전쟁이 얼마나 사람을 망가뜨리는지, 사람들의 모습이 저마다 얼마나 다른지, 끝까지 잃지 않아야 하는 건 무엇인지 또렷이 말해 주었다. 선생님은 이미 그런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고 계셨던 거다.

그렇게 마흔에 읽은 이 책이 나의 책 읽는 습관을 바꿔 놓았다. 그 전에는 새 책에만 눈길을 줬지 한 번 읽은 책은 어지간하면 다시 읽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만나면 만날수록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얘기가 들리며, 멀리 있던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책이 《좀머 씨 이야기》, 《연을 쫓는 아이》, 《파이 이야기》다. 지인이 추천한 《비밀의 화원》이 꺼내기 딱 좋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고.

내가 십 대의 풋풋한 나이에 오로지 사랑만 담았듯 육십이 되었을 때는 처음인 듯 낯선 얼굴을 만나 다른 보석을 담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읽는 데 적당한 나이란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읽는 이와 눈높이를 맞추는 배려, 마음을 읽고 얼굴을 닮아가는 기막힌 능력이 책에는 있으니까. 공감 가는 내용, 밑줄 그은 문장이 곧 나의 삶이고 생각이고 행동이려니.

새로 나온 책을 열심히 찾아 읽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아니, 그 나이에 저 책을?’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눈길도 즐기면 좋겠다. 더구나 책읽기에 좋은 계절이 오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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