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주 안산문인협회사무국장.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중략)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 일부분이다.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수가 된 그가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를 묶은 책인데, 읽은 지 20여 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유독 이 내용은 그 울림이 여전하다. 특히 여름이나 겨울이 시작될 무렵 마치 하나의 의식을 치르듯 일부러 찾아 마음에 새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조금만 덥거나 추워도 ‘더워서 죽을 것 같다, 추워서 못 살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내게 자연 현상 그 자체가 사랑 받고 미움 받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는 감옥의 현실은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고, 그 충격은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고 끊임없이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으며 자신이 한 그대로 받는다는 말을 믿어 왔다. 그런데 자신의 의지나 행동의 결과와 상관없이 미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글쓴이의 고백은 살아온 인생과 살아갈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던져 주었다. 그 이후 감옥과 견주어 내가 얼마나 행복한 조건에 살고 있는지를 각인시키곤 했고, 여름이나 겨울을 한결 수월하게 넘길 수 있었다.

책이 주는 이로움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이런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일부러 감옥에 갈 일은 아니다. 감옥에 간다고 모두 그런 깨달음을 얻지도 못할 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미욱한 내가 아닐는지. 그래서 책을 통해 배우는 삶이 기쁘고 행복하다. 책 속의 사람들이 건네는 말이 더없이 소중하고 감사한 건 그런 대리경험이 내게 주위를 둘러보게 만들고, 견디는 힘을 주어서다.

백 년 만의 초강력 더위가 물러갔지만 내년의 더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쩌면 매 해 처음 보는 더위와 인사를 나눌 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알면 수월하므로. 감옥에서 37도의 열덩어리를 견디는 방법은 그 원인이 더위에 있음을 잊지 않고 함께 땀을 흘리는 거다. 서로를 짠하게 바라보는 거다. 우리도 이렇게 더웠던 이유와 해결 방법을 안다. 일단 살아냈으니까 서로를 다독이며 자신 안에 있는 답을 꺼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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