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때요? 시원해 보이시나요? 음~ 그렇지는 않다고요? 왜요?

화면을 구성하는 인물들의 옷과 물빛이 검고 어두운 초록 빛을 띄어서 인 듯 하다구요?

그럴지도 몰라요. ‘에트레타 절벽 부근의 해수욕’이란 작품으로 펠릭스 발로통(Felix Vallotton 1865~1925)의 그림이니까요. 발로통은 강렬하고 환한 색채를 사용했던 반 고흐와 왜곡된 형태로 인물을 묘사해 심층내면에 감춰진 언어들을 화폭에 형상화 하려 했던 툴루즈 로트렉의 화풍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고 해요. 그는 회화는 사실적인 표현이 아니라 사상적이고 심경적인 것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화면은 또 다른 창조이고 형태나 색채가 모두 작가의 해석에 따라 결정된다고 여겼지요. 원근법을 무시한 평면적인 묘사와 굵은 윤곽선, 상징적이고 장식적인 기법으로 자신의 사색을 화면에 나타 냈어요. 회화의 사실성보다 형식에서 발견되는 조형미와 장식성을 추구하고 무척 감각적이지요..

다시 한 번 그림을 찬찬히 뜯어 볼까요? 더운 여름인가 봅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물가에 나왔네요. 화면 좌측 상단엔 노를 잡은 작은 보트가 있지만 수심이 깊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가로 줄무늬의 아이가 보트 난간을 잡고 뭔가 얘기를 하는 듯 하지요?. 어쩌면 자신을 태우고 더 멀리 나가 보자고 하는 지도 몰라요. 아이들은 모험심이 강하니까요. 화면 앞 중앙 부분에는 여러 명의 어른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짙은 초록 바다에 하반신이 잠겼네요. 검은 옷, 초록 바다, 붉은 티셔츠와 쇼올 등이 보입니다. 색들에게 서열을 매긴다면 난동이 벌어질 것 같지요?. 어느 한 색도 엑스트라가 없이 모두 주인공입니다. 화면은 강한 보색 대비로 물놀이를 하고 있는 한 명 한 명의 무게중심을 고르게 분산시킵니다. 저마다의 충일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광경이지요.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누구도 집중되지 않아요. 이러한 대담하고 획기적인 화면 구성과 색채는 이후 나비파에 흡수되고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나비(Nabis)는 히브리어로 ‘예언자’를 뜻합니다. ‘나비’는 과거 종교가 담당했던 역할을 미술이 대신한다는 뜻으로 프랑스의 시인 앙리 카자리스(Henri Cazalis)가 붙인 이름입니다. 우리의 모국어는 ‘나비’를 소리 내는 순간, 창가에 기웃대는 봄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만 19세기 중반의 유럽은 작가 자신의 내면을 분석하여 현실과 상관없이 화가의 마음대로 형태나 색채를 완성하는 예술형태를 ‘나비’라고 명명 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가난한 언어로는 매일 수은주를 갈아치우고 있는 이 더위를 대신할 다른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폭염(暴炎), 폭서(暴暑), 열일(烈日) 등 열기 가득한 언어 대신 친구와 연인과 가족과 동료와 충만한 자연을 누리는 자신만의 감각적인 여름을 보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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