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안산환경미술협회 김용남 회장

김용남 안산환경미술협회 회장을 인터뷰한 15일은 가마솥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린 탓인지 얼굴에 비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부모님이 남자이름을 짓은데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남동생을 보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고 한다. 그의 사무실 한켠에는 갓 쪄낸 옥수수가 3개가 놓여 있었다. 평소 좋아한 탓인지 인터뷰를 하기 전 옥수수 한개를 금방 해치웠다. 미술을 하는 사무실이라 그런지 사방을 둘어봐도 손때묻은 그림 작품 뿐이었다.

김용남 안산환경미술협회장이 자신의 작품을 뒤로하고 생활미술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Q 안산환경미술협회에 대해 설명해 달라.

-남들이 보면 '환경'이라는 말이 들어가서 무슨 환경과 관련된 협회인가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그냥 비전문 미술인들의 단체라고 보면 된다. 자신의 그림을 그려놓고 전시할 방법을 몰라 걱정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부분을 도와주고 협력하는 단체다. 어느 작가든지 참여할수 있고 함께 할수 있다. 미술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Q 언제 창립됐나. 회원들의 구성원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지난 2004년에 창립됐으니 벌써 1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당시에는 협회 사무국장으로 일했는데 뜻하지 않은 병마를 만나게 됐다. 2008년에 유방암이라는 선고를 받고 하늘이 노래졌다.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하면서 인생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됐다. 누구나 말하지만 건강이 최고인데, 한때는 힘들었다. 지금은 완쾌돼 새로운 인생을 살고있다. 인생이 너무 즐겁다. 그러면서 수석 부회장이라는 직함으로 갖게됐고 지난 2014년에 회장으로 취임했다. 지금 회원수는 대략 400여명이 등록되어 있다.

유방암 선고받고 또 다른 미술세계 설렵

지역주민과 화합하는데 벽화사업 일등공신

                     ⋮

항상 응원하는 남편·아들·며느리에 감사함 느껴

학생들이 그린 벽화 '저거 내가 그린거야' 존재감 드러낼 때 행복

Q 회원들의 성별이나 나이는 어느정도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400여명의 회원중 95%가 여성으로 되어있다. 50대와 60대의 여성 작가가 대부분이다. 3분의 1 정도가 전문 작가들이고 나머지는 그림을 좋아하는 초년생이라고 할까? 어찌보면 작가의 꿈을 키우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주부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한국화와 수채화, 유화 문인화 도예, 서각, 서예, 민화 분과로 분리되어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행복하다. 어떤이는 미소를 머금고 어떤이는 입을 벌리고 있지만, 그림의 손놀림을 볼때면 '참 행복한 분들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Q 그동안의 활동이 궁금하다.

-지난 6월4일부터 10일까지 '2018 행복의 바람이 분다'라는 정기회원전을 단원미술관에서 개최했다. 언제나 '좋은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행복의 바람이 분다'고 생각하면 언젠가는 그렇게 된다는 판단에서 전시를 기획했다. 2016년 부터 단원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깃발 展'도 마찬가지다. 200여명의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오는 10월 한달간 개최되는 행사다. 우울한 것은 날려버리고 '희망'이라는 말만 간직하고 살자는 작품이다. 긍적적인 마인드는 결국 나 자신에게 유리한 희망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회원들과 벽화작업을 끝내고 한가롭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Q 학생들과 함께하는 봉사 얘기를 들었다.

-맞다. 지역사회에 참여해보자는 취지로 시작했는데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2016년 여름방학때 본오중학교 학생과 우리 회원들이 본오동 우범지역 놀이터에 '마을이 학교다'라는 마을 공동체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소통하는 벽화 그리기'를 시작한 것이다. 학생과 우리 회원, 그리고 주민들이 한마음으로 벽화를 그리면서 소통과 화합의 중요성을 깨우쳤다. 벽화를 그리고 아래에 아주 작은 글씨로 분식점 식당 등을 표기해 줬는데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더라. 어떤 분은 라면을 스폰하는 경우도 있었다.

Q 얘기를 들으니 미술이 뭔가를 승화시킨다는 느낌이 든다.

-동네에 벽화를 그리는 등 지역주민과 학생이 소통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안산상록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경찰이 이 같은 사업에 동참하고 싶다는 거였다. 그래서 경찰들과 공동으로 본원초등학교에 벽화 그리기를 함께 했다. 이어 능길초등학교도 관심을 갖고 동참 의사를 밝혔다. 그 학교는 다문화 학생이 70% 이상을 차지하는데 그 학교도 벽화 그리기 사업을 추진했다. 능길초등학교는 교내에도 벽화그리기 사업을 병행했다. 학생들은 모두다 '자신의 추억을 만든 기분이다'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다. 모든게 회원들의 협조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Q 굉장이 즐거운 표정이다.

-그럴수 밖에 없다. 학생들이 가족과의 대화에서 벽화를 가르키며, '저거 내가 그린거야'라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한마디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때 사람은 행복감을 느낀다. 이 사업을 하면서 특히 본오중학교에 근무하던 젊은 남자 교사의 뜨거운 열정을 보았고 지역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에서 뜨거운 정을 느꼈다. 학부모님들의 적극적인 협조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Q 또다른 미술 사업은 뭐가 있나.

-경기도 교육청과 안산시 교육지원청의 후원으로 진행하고 있는 '꿈의 학교'다.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 실패해도 좋다'는 프로젝트인데 3년째 운영하고 있다. 60개중에 대표를 맡고 있다. 누구나 자유스럽게 그림을 그리고 실패를 경험하면서 과정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목적이 있다. 학생들이 수업안을 만들고 스스로 끌고 나가자는 취지다. 학원이나 학교에서 할수 없는 것들을 꿈의 학교에서는 모두 가능하다. '예술은 좋고 나쁨이 따로 없고 잘하고 잘못함이 없다'는게 나의 신념이다. '무조건 잘했어' 라는 칭찬만큼 좋은말은 없다. 창의력을 길러주기 위한 방법이다.

학생들이 벽화를 그리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Q언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나

-아버지가 글을 잘 쓰셨고 그림을 잘 그렸다. 가족들이 모두다 미술을 좋아하고 소질이 있다. 아주 어릴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그림은 내 인생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반성할 점도 있다. 사실 작가는 작가로서 역할을 다하면 되는 것인데 나 같은 경우는 그 평범한 룰을 벗어났다. 미술단체장을 맡고 있으니 나만의 작가 세상을 펼치기가 부족한 면이 있는 것이다. 작자로서 순수성이 결여되었다고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앞으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드리고 싶다.

Q 막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회원중에 남자 작가 한분이 계시다. 40년간 오직 한길로 그림을 그렸는데 경제 사정이 너무 어렵다. 그러나 그분은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고있다. 여러번 전시회를 가졌지만 기대만큼 경제적 이득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남자 작가의 부인되시는 분이 어려운 일을 하시면서도 남편의 가는길에 힘이되어 주고 있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분들을 볼때마다 존경과 한편으로는 안타까움을 느끼고있다. 그 작가에서 꼭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랄뿐이다. 그리고 나의 남편과 아들, 며느리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사업을 하는 남편이 IMF 시절에 경제적 어려움이 많았다. 그런데도 나의 미술활동에 큰 지장을 주지않고 응원을 한 사람이다. 그림만 그리는 모습을 보면 자신이 행복하다는 남편에게 감사함을 꼭 전하고 싶다.

 

저작권자 © 반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