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호가스(Willian Hogarth)는 영국에서 ‘세익스피어 다음가는 희곡의 대가’라 언급되는 영국의 화가이자 판화가 입니다. 그는 몹시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나 정식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호가스의 작품이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것은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도덕관념이 무너진 당대의 사회상과 병폐를 신분과 계층에 상관없이 날카롭게 풍자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탕아의 인생역정’이나 ‘유행하는 결혼’등의 연작 작품을 통해 영국적인 유머감각을 회화에 드러냅니다.

당시 18세기의 영국은 위축되긴 했지만 귀족이라는 신분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계층과 상공업의 발달로 인해 강력한 자본을 축적한 신흥 부르조아 세력이 이끄는 쌍두마차였습니다. 몰락해 가는 귀족은 자본의 중심인 부르조아와의 결혼을 통해 품위 있는 생활을 영위하고 싶어 했고 부르조아는 신분세탁이 필요했지요. 두 계급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유행처럼 계약결혼이 번집니다.

위 그림을 보실래요? 윌리엄 호가스의 <결혼계약>입니다. 오른 쪽, 테이블을 마주하고 신랑, 신부의 아버지가 있네요. 풀려진 두루마기에는 정복왕 윌리엄 1세로부터 이어진 가문의 족보가 나타나 있습니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이 준 통풍으로 인해 다리에 붕대를 감은 신랑의 아버지는 은근히 족보를 내비치며 자신이 귀족 집안임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맞은 편 신부의 아버지는 안경을 고쳐 쓰며 계약서의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고 있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신부 아버지가 내놓은 지참금이 쌓여있지만 아마도 이 돈은 가운데 서 있는 회계사의 손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창 밖에 공사가 중단된 커다란 건물이 보이거든요. 아마도 돈이 지급되지 않은 게지요.

그럼 신랑, 신부를 볼까요? 그림 왼 쪽의 신랑, 신부는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있습니다. 신랑의 목에는 매독을 앓고 있다는 걸 암시하는 커다란 검은 점이 있습니다. 신랑의 성생활이 이미 문란함을 보여줍니다. 신부 또한 검은 옷을 입은 남자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있네요. 아래의 개들은 충절과 결혼을 의미하긴 하지만 족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붙어 있습니다. 결혼을 통해 돈으로 신분을 산 여인과 몰락한 가문의 품위를 위해 지참금을 택한 남자의 결혼은 어떤 모습일까요? 신랑,신부의 머리 위로 메두사의 그림이 걸려있는 건 우연일까요?

주위에는 늘 ‘사랑’이 넘쳐납니다. 압도적인 무게와 큰 목소리여서 ‘우정’이니 ‘연민’이니 하는 낡고 조로(早老)한 감정들은 이 사회에 발 붙이기가 힘들 지경입니다. 젊은이들 사이에 ‘친구’는 ‘남사친’, ‘여사친’이라고 부제를 붙일 정도로 ‘이성간의 사랑’이 주류입니다. 그럼에도 사회는 거친 말과 아량 없는 태도와 폭력적인 행위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혹시, 사랑이 상대와 공평하게 교환하는 품목 중의 하나가 된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이유가 사회의 과도한 경쟁의 결과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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