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주 <자고 있어, 곁이니까>에 나타난 출산의 가치

한 달 전쯤으로 기억한다. 책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이 담긴 앨범을 발견했다. 사진을 통해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을 보니 뭔가 감회가 남달랐거니와 매 사진마다 두 세 줄 정성 어리게 적힌 내 어머니의 글들을 읽어 보니 세상을 향해 첫 발걸음을 떼는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깊은 사랑도 다시금 느껴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 생산해내는 수많은 글 들 중에서 '일기'만큼 지난날에 대한 회상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향유하고 있는 텍스트는 드문 것 같다.

한 남자의 아내이며 장차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을 한 아이의 어머니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에게 이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장작 40여 주라는 기간 동안 자신을 준비한다. 장차 찾아올 불편함을 위해 의복을 여유 있는 옷으로 바꾼다. 식습관 또한 신경 쓰고 매사에 조심에 조심을 거듭한다.

마침내 태내에 있는 아이가 자신의 존재를 알려온다. 그리고 하루하루가 지나갈수록 그 메시지는 분명해짐을 넘어 견디기 힘든 육체적 고통까지 수반해온다. 입덧이 계속되고 우울감은 계속된다. 심해지는 요통으로 인해 화장실에 다녀오는 횟수는 빈번해진다.

책 <자고 있어, 곁이니까>는 바로 이러한 어머니의, 아내의 모든 일련의 과정들을 바라보며 함께 출산을 느끼고 태내의 아이와 교감하는 남편의, 아버지의 육아일기 형식으로 엮여 있다. 작가는 바로 이러한 조금은 독특한 형식을 통해, 임신에서 출산에까지 이르는 일련의 과정들은 부부가 함께해야 함을 일깨워준다.

나는 이 일기에서 '사랑의 미학'을 찾을 수 있었다. 이는 다시 '아내에 대한 사랑'과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구체화될 수 있다. 또한 '숭고함과 경이로움에 대한 사랑'으로 구체화 된다.

임신으로 인해 나타나는 아내의 신체의 반응에 대한 묘사는 아내를 향한 관심어린 사랑이요, 아내의 배에 귀를 기울이고 태내의 아이와 소통을 나누려하는 모습은 장차 자신의 눈앞에 나타날 아이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으로 귀결된다. 또한 자신의 신체 내에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존재에 대한 신비로움은 포유류만이 지니는 독특한 특징에 대한 숭고함과 경이로움의 사랑으로 표상된다.

작가의 독특한 육아일기가 우리에게 주는 현재적 의미는 무엇일까.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겠으나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협동과 사랑이라는 가치에 집중하고 싶다. 신은 여성에게 자신의 신체 내에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부여했다.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40주라는 기간 동안 태내의 아이와 늘 함께하며 육체적 정신적으로 아이와 교감을 나눈다.

남성에게는 이러한 신성한 능력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이러한 일들에 있어서 늘 한 발씩 뒤로 물러서 있게 되며, 이는 결국 '출산과 양육은 여성의 영역'이라는 인식으로까지 귀결되게 된다. 김경주의 <자고 있어, 곁이니까>는 이러한 사회적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마주하며 도전한다. 출산과 육아는 어느 특정 성(性)의 영역이 아닌, 남성과 여성, 남편과 아내가 함께 해야 할 협동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의 '사랑'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며 가족에 대한 사랑이다. 또한 이는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귀결된다. 그는 지금 내 옆에서 함께 숨을 쉬고 있는 아내에서부터 그녀의 몸과 연결된 줄로써 교감하는 아이까지 사랑하지만 결국 이는 자신을 사랑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본다. 장차 태어날 아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도 결국 그 아이로 인해 자신이 행복하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저작권자 © 반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