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경숙(인문학공간'벗으로가는길'대표)

사람들은 감정을 몸의 여러 부분에 담아 놓습니다. 두려움에 떨면 소변이 마렵습니다. 두려움은 방광이 감당하기 때문입니다. 흥이 나면 심장이 뛰고 분노는 간을 상하게 합니다. 슬픔이 지나치면 폐에 녹이 습니다. 우리의 몸은 외부의 충격이 왔을 때 가장 약한 곳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깊이 아픕니다. 시대도 그러합니다. 시대의 고통을 어루만지고 고름을 짜내는 자리에 예술이 있습니다. 예술은 ‘시대의 혀’이고 ‘시대의 메스’입니다. 예술가는 입술을 떼어 역사를 증언합니다.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럽은 거의 모든 날들이 승부를 갈라야 할 역사적 사건들로 가득 찬 시대였습니다.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는 17세기,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활동했던 바로크 시대의 거장입니다. 6개 국어를 사용했고 교양과 유머를 갖춘 따뜻한 품성의 화가이면서 외교관이었습니다. 그는 특히 1618~1648년에 걸친 종교전쟁 시기, 영국과 스페인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애씁니다. 그가 당시 끊이지 않았던 유럽의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위해 선택한 것은 그림 한 점입니다. 그는 <전쟁과 평화>라는 작품을 영국의 왕 찰스 1세에게 바칩니다.

그림 가운데 오른 손으로 왼쪽 가슴을 눌러 젖을 짜내는 여인이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평화의 여신 ‘에이레네’입니다. 에이레네 가슴에서 뚝 뚝 떨어지는 젖을 먹고 있는 아이는 재물의 신 플루토스 입니다. 젖이 입가에 흘러 넘치네요. 재물과 부는 평화의 젖을 먹고 자라는 게지요. 플루투스 앞에는 반인반수인 사티로스가 풍성한 과일이 담긴 커다란 뿔을 들었고 사티로스 옆의 여인은 금 은 보화가 담긴 바구니를 끼고 있네요. 넓게 보시면 그림은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이어지는 대각선에 의해 두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지요. 오른 쪽 위로 갑옷을 입고 빨간 망토를 입은 전쟁의 신 아레스와 복수의 여신 알렉토가 어두운 먹구름 아래 전쟁을 몰고 오려고 합니다. 그러자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투구를 쓰고 아레스를 힘껏 막아섭니다. 아테나의 방패 아래로 사랑의 신 에로스가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루벤스는 에이레네의 머리에 승리의 월계관을 씌우려는 헤르메스를 통해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의 방패로 전쟁으로부터 평화를 지켜내자고 말입니다. 경제적인 풍요와 번영은 평화만이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웅변합니다. 이 그림을 받고 영국과 스페인은 평화협정을 체결했습니다. 6월은 우리에게 전쟁의 아픔을 일깨워줍니다. 아직도 많은 이산가족이 있고 그들의 눈은 울고 있습니다. 진정 ‘평화’를 원하는 사람은 평화를 운에 맡기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가 붓을 들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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