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길을 나서다가 아파트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한 여성이 눈에 띄어 유심히 바라보았다. 급한 볼일이라 서둘러야 하는데도 오래간만에 보는 인상적인 모습에 그녀 앞을 지나가는 시간만큼은 천천히 걸었다. 내용은 알 수 없으나 꽤 두꺼운 분량의 책을 들고 있는 화장기 없는 평상복 차림의 그녀에게서 뭔가 특별함이 느껴졌다. 시선이 따가웠는지 그녀가 고개를 드는 바람에 넋 놓고 바라보다가 잠시 눈이 마주쳤다.

벤치와 책! 조화롭고 정겹다. 예전에는 곳곳의 흔한 풍경이었는데 요즘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휴대폰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부터 책 읽는 사람들은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야 볼 수 있다. 휴대폰에도 책이 저장되어 꺼내 읽을 수도 있겠지만 종이책을 읽는 모습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그래서 오래간만에 보는, 벤치에 앉아 종이책을 읽는 분위기 있는 한 여성에게 잠시 마음이 뺏겼던 것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생각이 깊고 넓어 여유가 있다. 정보의 홍수로 얻는 다양하지만 얕은 지식층에서 보이는 조급함이나 얍삽함이 없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그들의 풍요롭고 풍성한 영성이 전해져 뇌가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필자는 학생들에게 독서토론과 글쓰기를 가르치고 성인들에게 서평 강의도 하며 칼럼도 쓰고 있지만 여전히 조급하고 얍삽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만큼 독서량이 부족하다는 증거다.

조금 늦더라도 책을 통해 마음의 양식을 차곡차곡 쌓아야 흔들림 없이 알차고 단단한 곳간이 됨을 알면서도, 늘 바쁘다는 핑계로 급행 SNS의 막무가내 정보에 그때그때 기대곤 한다. 필자뿐 아니라 현대인의 대체적인 모습일 것이다. 아는 것은 많은데 체계가 없어 잡다한 생각들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정보를 얻지 못하면 불안하고 대화중에 끼지 못하면 머리가 아프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이다. 요란한 빈 수레 같다.

그래도 주변에 독서모임을 결성하거나 찾아다니며 꾸준히 책을 나누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많아 다행이고 더불어 행복하다. 필자가 강의하는 중앙도서관 시민서평단의 회원들도 매주 서평을 써온다. 책 한 권에 대한 서평을 쓰려면 적어도 두 번 이상은 정독해야 한다. 어떤 이는 다른 책과 비교하기 위해 서너 권의 책을 읽기도 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과정은 생각보다 힘들다. 그래서 포기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그 고비만 넘기면 꿀 같은 맛을 느낄 수 있다.

도서관의 다양한 독서프로그램, 지역 서점에서 운영하는 독서포럼, 문학 단체의 글쓰기 스터디 등 찾아보면 돈 들이지 않고도 마음의 양식을 얻을 곳이 많다. 바쁜 현대 사회에서 여유를 갖고 싶다면, 불안한 경쟁사회에서 마음의 안정을 얻고 싶다면, 잡생각들로 가득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싶다면 책 읽기를 권한다. 인내심이 없어 혼자 지속하기 힘들다면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찾아보기 바란다. 서로 독려하며 꾸준히 책을 읽다보면 얼마 후 변해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2년째 꾸준히 중앙도서관 시민서평단으로 활동하며 매주 책을 읽고 글을 써오는 단원들 중에는 현재 지역신문에 서평을 기고하거나 작은 도서관에 자신만의 서평 코너가 생기거나 각종 대회에서 수상하는 영예를 얻고 있어, 달라진 삶에 스스로 놀라며 행복한 고백을 해오고 있다. 노력에 대한 성과다. 안산문인협회 평생문학대학 문학스터디반을 통해 글쓰기를 처음 접한 이들 중에서도 꾸준한 노력과 주변의 도움으로 문학지에 등단하여 작가로 활동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사례는 곳곳에 많다. 조금만 관심을 돌리면 우리의 삶이 바뀔 수 있다. 그 모든 것에 우선은 책 읽기다. 예전처럼 공원 곳곳의 벤치에 앉아 책 읽는 이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문화의 도시 안산이라고 하는데 시각적으로 책 읽는 시민들의 모습이 밤낮 보이면 더 좋지 않겠냐며 필자에게 시청에 가서 건의를 좀 해달라고 하던 한 선생님의 말이 생각난다. 꼭 보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런 공간이 공원이나 정거장 등 곳곳에 있으면 자연히 책을 읽지 않겠냐는 의견이다. 책이 있는 벤치와 그 옆의 가로등. 생각만 해도 멋지다. 누군가 시청까지 가기 전에 ‘누구나 어디서나 책 읽는 안산’이라는 그분의 고견이 실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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