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프랑수아 밀레<씨 뿌리는 사람>

한 사내가 있습니다. 기우는 몸을 우뚝 세우려는 듯 그의 앞 발은 단단히 대지를 딛고 있습니다. 씨를 뿌리는 오른 손에는 힘이 넘치네요. 그의 어깨는 완강하고 굳세 보입니다.

눈은 보이지 않으나 아마도 피할 수 없는 노동의 삶을 마주하고 있는 듯 정면을 향해 있군요. 막 동이 트나요? 오른 쪽 화면에 희미한 여명이 비칩니다. 물감을 두텁게 바른 붓질과 어두운 색조는 경사진 언덕을 갈지자로 걷는 농부의 걸음이 마치 땅 속에 뿌리를 두고 솟아난, 거친 풍상을 견딘 나무 같은 느낌을 갖게 합니다. 육중하고 숭고한 노동의 모습입니다.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cois Millet 1814~1875)는 섬세하고 예민한 시선으로 일하는 농부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마치 바위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인간을 꺼내 듯, 인물의 세부 묘사를 생략하고 큰 덩어리만을 남겨 화면 정 중앙에 놓습니다.

그의 농부는 특정한 개인이 아니고 일하는, 노동하는, 그러면서 삶의 무게를 짊어 진 숙명적 인간으로서의 농부입니다. 마른 두 손으로 씨를 뿌려 하루 일용한 양식을 구할 수밖에 없는, 낙원에서 추방당해 갈 곳 없는 인간으로서의 농부입니다. 그래서 그의 농부는 끊임없이 독수리에게 간을 파 먹히는 프로메테우스적인 시간의 순환, 한복판에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귀족들이 우아한 바로크식 서랍 속에 정리했던 유럽의 관습과 문화와 가치를 근대라는 용광로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펄펄 끓는 ’자유, 평등, 박애‘가 녹아 나왔지요. 하지만 아직 그 쇳물로는 농기구도 무기도 심지어는 장식물도 만들 수 없었습니다. 그 뜨거움을 근대의 사상과 정치형태로 변환시킬 거푸집이 필요했습니다.

1846년, 극심한 흉작으로 파리 시민은 굶주립니다. 소수 부유한 지주층이 권력을 잡은 당시의 입헌 군주정은 굶주림과 비참한 노동조건에 대한 불만을 무시했지요.

1948년 2월 22일, 파리에서 격렬한 시가전과 폭동이 일어납니다. 24일, 왕 루이필리프 1세가 퇴위합니다. 격동의 시기에 품게 된 급진적인 상상력은 시계를 거꾸로 돌립니다.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바뀌며 나폴레옹 3세가 집권했거든요.

뒷걸음치는 역사의 한복판인 1850년, 살롱 전에 밀레는 위험한 비탈에 두 다리를 딛고 씨를 뿌리는 한 농부를 보여 줍니다.

평생을 노동하는 사람들을 즐겨 그렸던 밀레에게 있어 근대이념은 무엇이었을까요? 이념과는 상관없이 하루의 정직한 노동으로 하루를 먹고 사는 농부의 삶이 세상의 중심이며 변하지 않는 가치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닐까요?

6월6일은 현충일과 동시에 망종(芒種)입니다. 망종은 24절기 중 아홉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로 벼, 보리같이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종자를 뿌리는 시기입니다.

모내기와 보리 베기에 알맞은 때지요. 보리 베고 난 후 모내기를 하며 풍성한 가을걷이를 상상하듯 다가오는 날들이 낡은 것들을 베어버리고 주체 하나 하나가 세상의 중심이 되는 시기이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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