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0.4.3 금 18:23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2
비정규직 800만 명 시대, 해법은
오만학 기자 | 승인 2018.06.07 10:28

결정적인 순간, ‘도덕’에 호소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도덕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경제 분야에서도 유달리 강자에게 도덕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상생의 윤리’와 ‘고통 분담’이라는 이름으로 대기업에게, 사용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관계가 대표적이다.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불공정 하도급 계약을 맺고 있는 상황에서 기댈 수 있는 언덕은 ‘상생의 윤리’다. 그러나 밑도 끝도 없는 ‘상생’을 위해 중소기업을 보듬어 안으려는 대기업은 없다. ‘고통 분담’도 마찬가지다. 노사 관계에 있어서 고통 분담을 내세우는 쪽은 주로 사용자지만, 고통을 떠맡는 쪽은 고용자다. 가진 자가 더한 경우가 많은데도, 무조건 도덕에 호소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촘촘한 법과 제도다. 도덕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풀기위해 국가가 마련한 해결책이 법과 제도에 있다.

노동 선진국은 법과 제도가 탄탄하다. 무책임하게 도덕에만 호소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비정규직이 부끄럽지 않은 나라, 덴마크가 대표적이다. 덴마크는 ‘유연안정성(Flexicurity)’으로 대표되는 노동 선진국이다. 유연안정성은 해고의 자유로움을 뜻하는 ‘유연성’(flexible)과, 사회적 안전망을 뜻하는 ‘안전성’(security)의 합성어다. 즉, 유연한 고용시장과 탄탄한 사회안전망, 실업자를 위한 적극적인 교육·훈련을 바탕으로 노동이 손쉽게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숨통을 틔워둔 셈이다. 그 결과 덴마크의 실업률은 1990년대 초반 10% 수준에서 최근에는 1.9%로 감소해 완전 고용 수준에 다다른 것으로 평가받는다. 도덕으로만 메울 수 없는 부분을 법과 제도로 보완한 고용 시스템이다. 대한민국 비정규직 해법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법과 제도다.

2007년부터 시행된 비정규직 보호법은 여전히 도덕에 호소하는 측면이 강하다. 법과 제도의 그물코가 허술하기 때문이다. 기륭전자 사태가 대표적이다. 사용자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최저임금보다 ‘10원’ 많은 임금을 지급하면서도, 이유없이 해고를 일삼았다. 그러나 법과 제도에 의해 제재 받은 것은 수백만 원의 벌금에 불과했다. 법과 제도를 엉성하게 짜놓고 도덕에 호소하다보니 생긴 문제다. 비정규직 문제에 관해 도덕에 호소함으로써 해결을 바라는 것은 무망(無望)하다. 기륭전자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베풀 수 있는 도덕의 크기는 ‘10원’의 여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적인 대책은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비정규직 근로자가 전체 근로자가 53%(800만 명)에 이르고 비정규직의 4년 내 정규직 전환비율이 9%에 불과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비정규직의 규모를 축소하는 것보다 비정규직 차별을 철폐하는 법과 제도를 바로 세우는 것이 현실적이다.

“같은 일을 하면 비슷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출범초기 정부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 원칙이었다. 이 원칙이야말로 당연하면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할 비정규직 문제 해법이다. 일본의 경우에도 OECD 국가 중 상대적으로 높은 비정규직 비율에도 불구하고, 직무급제에 기초해 비정규직 노동을 인정해 줌으로써 이 원칙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대기업 정규직 위주의 노동 정책을 실행함으로써 비정규직 근로자의 수는 늘어나게 하면서, 고용의 질은 떨어뜨리고 있다. 엉성하게 세운 법과 제도가 낳은 결과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확고한 원칙 아래, 비정규직 차별을 철폐하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를 정비함으로써 800만에 이르는 비정규직 문제 해법을 구할 필요가 있다. 도덕에 호소할 때가 아니다. 결정적인 순간일수록, 법과 제도에 호소할 때다.

 

오만학 기자  nti123@daum.net

<저작권자 © 반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만학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704-1 대우빌딩 305호 반월신문사  |  Tel 기사제보 : 031)415-5533, 6644  |  팩스 031)415-2237
창간일자 : 1990년 11월 1일  |  발행인 : 홍일호  |  e-mail : webmaster@banwol.net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일호
Copyright © 2008 - 2020 반월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