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보다 베풂이 가치 있는 삶이죠"

척추관절 전문병원 박진영 원장.

한 분야에서 성공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다. 그 분야가 어느 분야이던 간에 1인자가 되면 명예와 더불어 부를 누릴 수 있다. 특히 의료분야는 성형, 치과, 내과 등 특정 인기병원을 제외하면 쉽사리 도태되기 일쑤다.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 척추관절 분야에서 안산시민이면 누구나 떠오르는 병원이 있다. 10년도 채 되지 않아 척추관절 치료에 있어 입소문이 난 ‘박진영 병원’ 이야기다. 바른 자세가 척추질환을 예방할 수 있듯이 바른 진료, 넘치지 않는 진료가 환자와의 신뢰를 이어갈 수 있다는 박진영 원장의 의학 철학이다. 특히 특화된 의료기술을 환자들이 선호하면서 발전하는 첨단 의료 지식들을 대상으로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세는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하는 박 원장. 무엇보다 모든 환자를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어떤 진료를 해야 하는지 ‘답’이 나와 있다고 전하는 박원장을 만나 그의 성공가도 스토리와 의료가치관에 대해 들어본다.

▶약 9년 전 병원 개원 후 비교적 빠른 시일에 안산지역 내에서 척추관절 전문병원의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비결이 무엇인가?

모든 환자를 내 부모와 내 형, 누나 등 가족이라고 생각하면서 진료를 한 것이 빠른 성장을 이루는데 큰 에너지가 되었다. 여기에 꾸준한 투자와 첨단 의료기술의 도입, 운동치료를 병행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면서 환자들의 예후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기본적인 의료 실력을 쌓아 나가면서 모든 병원 가족들이 환자를 자신들의 가족구성원이라고 생각하면서 친절하게 대한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겠다.

바른 진료, 넘치지 않는 진료가 환자와의 신뢰를 이어갈 수 있다

환자를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어떤 진료를 해야 하는지 답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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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능력이 뛰어나도 조금 모자란 여럿을 당해낼 수는 없다

좌우명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자'…복지재단설립이 꿈

▶의사 박진영의 어린 시절이 궁금하다. 청소년 시절부터 의사를 꿈꾸었나?

처음엔 과학자가 꿈이었다. 특히 발명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주제넘지만 무엇인가를 만들어 세상을 바꿔보려 했던 것 같다. 인간을 좀 더 편하게, 가치 있게 살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인생의 중대 기로에서 공대를 선택했다. 하지만 이내 나의 길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공부를 꽤 잘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재차 의대에 도전했고, 그렇게 세상을 고치는 삶을 살게 됐다. 의대 6년과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과 군대 3년을 거쳐 지금의 박진영 의사가 되었다. 지금은 환자를 만나고, 새로운 인생을 살도록 돕는 시간이 즐겁고 자랑스럽다.

▶평소 병원에 있는 진료 외 시간에 즐겨하는 취미는 어떤 것들이 있나?

책과 바둑을 좋아한다. 책은 인문학과 역사에 관련된 책을 좋아하고, 바둑 기사 중에는 이창호 바둑에 호감이 간다. 가장 함께 읽고 싶은 도서를 꼽으라면 ‘유대인 이야기’를 택하고 싶다.

박진영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자만하지 않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깨우침을 준 글이 담겨져 있다. 바둑 실력은 아마 3단 정도인데 많은 환자들을 진료하는데 있어 집중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다음에 둘 몇 수를 내다보는 것이 바둑의 실력을 가늠하는 잣대인데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다음 치료를 구상하게 된다. 향후 치료방침의 로드맵을 설정한다는 측면에서 바둑과 의료는 공통점이 참 많은 듯하다.

빅진영병원 내부 전경.

▶많은 환자들을 수 년 간 직접 진료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에 얽힌 이야기가 궁금하다.

약 6년 전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허리가 좋지 않은 할머니 환자였다. 허리 척추의 형태가 좋지 않아 앉아서 생활을 해야만 했었다. 그러다 병세가 악화돼 앉지도 못하고 누워서 생활하기에 이르렀다.

심각하게 수술을 고민했다. 도저히 걷게 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누워서 남은 삶을 살게 하기엔 너무 할머니의 인생이 안타까웠다. 자신감보단 사명감으로 수술을 집도했고, 행운이 곁들여져 앉아서만 생활하던 분이 1달 만에 걸었다. 나도 웃었고, 할머니는 더 환히 웃었다.

▶환자를 위한 작은 음악회 및 호수동어머니합창단 단장을 8년 째 맡고 있는 것으로 안다. 큰 대학병원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개인병원에서는 상당히 드문 일인데, 이처럼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향은 강원도 속초인데 같은 강원도 지역 인제에서 오랜 시간 살았다. 그러다 보니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시골의 정을 나도 모르게 가슴에 안고 성장했다. 특히 어머니는 소유보다 베풂에서 기쁨을 얻는 분으로 가진 것을 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무척이나 존경한다. 지금까지도 이웃과 나누어야 직성이 풀리는 분으로 나눔을 절대 아까워하지 않는다.

이러한 성장 배경이 나도 모르게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한 가치를 일깨워준 것 같다. 아울러 초등학교 시절에 야구선수였는데 당시 투수를 담당했다. 경기에 자주 나서면서 나만 잘 던지면 이길 수 있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서로 도와야만 최종 승리자가 된다는 ‘진리’로 변했다.

아무리 홀로 능력이 뛰어나도 조금 모자란 여럿을 당해낼 수는 없다.

병원 외관.

▶나쁜 환자와 좋은 환자를 구분 짓는 것은 어쩌면 어리석인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런 환자는 되지 않았으면 하는 사례가 있다면 조언해달라.

SNS와 각종 방송 채널이 늘어나면서 의료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그 정보들이 다 정답은 아니다. 잘못된 정보를 인지하고 마치 의사보다 더 의사인 듯 행동하는 환자분들이 간혹 있다. 조언을 해도 듣지를 않고, 고집을 피우다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바로 그런 환자분들이다. 이후 병세가 진행된 후 방문해서 후회를 한다. 이미 그때는 의료비도 더 많이 들고, 환자들이 느끼는 고통의 정도도 더 심해져 있는 상태다.

병원을 내원했으면 의사를 믿고 따라야 한다. 환자와 의사 간 신뢰 속에서 치료의 속도는 올라가고, 건강의 행복은 다가온다.

박진영 병원은 제일 마지막에 수술을 권유하는 곳이다.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진영 병원이 자신하는 탁월한 의료는 어떤 분야인가?

척추 관절분야는 대체적으로 다 자신 있다, 꼭 한 분야를 꼽으라면 디스크 파열 환자다. 즉 심한 디스크 환자인데 내시경 시술로 상태가 호전될 수 있다. 이외 허리가 약한 환자들은 장시간 운동치료요법을 통해 근육을 강화시키면 건강한 삶을 다시 되찾을 수 있다. 수년 간의 잘못된 습관으로 인해 얻은 질환이 주사 몇 번으로 좋아질 리 없다. 운동치료는 인내심이 필요하고, 박진영 병원에서 자신 있는 치료분야다.

병원가족 단체사진.

▶추후 의료인으로서의 인생 외에 도전해보고 싶은 일은?

복지재단을 설립해 소외된 이웃을 위해 전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며 봉사하고 싶다. 지금도 굿파트너즈 NGO이사로 약 6년 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나의 좌우명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자’이다.

지금의 병원 일에 충실하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찾아올 지 모르겠다. 재단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가족의 도움이 절실한데 지금도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약 80점 밖에 되지 않는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아마 더 나이가 들어 봉사를 하려면 80점대가 무너질 수도 있겠지만 ‘소유보다 베풂이 항상 가치 있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이 자리를 빌어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3명의 자식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박진영 원장 프로필

·1970년 4월3일생 강원도 속초 출생

·안산 21세기병원 원장(전)

·국군수도통합병원 신경외과 주임과장(전)

·분당차병원 및 고려대학병원 외래교수(현)

·대한신경외과학회 종신회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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