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엄마와 딸은 애증의 관계라고들 말한다.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누구보다 많이 싸우는 모녀 사이. 특히 사춘기 딸과 갱년기 엄마가 만나면 갈등은 절정에 달한다. 필자 역시 수년간 경험해왔고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지금도 잠재된 휴화산들로 여전히 조심스럽다. 그래서 간혹 찰떡궁합의 모녀를 만나면 부러운 반면 질투심이 인다.

그런데 ‘엄마의 말은 잔소리’, ‘엄마는 훼방꾼’의 이미지가 단단히 성립되어 필자를 밀어내기에 급급하던 딸이 바뀌고 있다. 조금씩 의견을 물어보며 다정하게 다가오더니 이번에 여행을 함께 가자고 제안해온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그 말로만 듣던 아슬아슬 스릴 넘치는 위험천만한 모녀해외여행을 말이다.

딸은 음악을 공부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그래서 사실 어디로 튈지 몰라 늘 불안한 존재다. 그런데 부족한 용돈을 충당하기 위해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한 주말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고 꾸준히 하는 모습에서 성실함을 보았다. 그리고 그 돈을 모아 계획적으로 사용하며 알뜰여행까지 즐기는 모습에 믿음직스러움이 생겨났다.

그래서 필자 또한 노력중이다. 우선 딸에 대한 관심을 반으로 줄이기. 방이 아무리 어질러져 있어도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으니 건드리지 않기. 복장에 대해 섣부른 의견 달지 않기. 사생활을 인정하여 소재만 확인되면 귀가시간은 본인에게 맡기기. 엉성한 계획처럼 보일지라도 그녀의 인생경험이라 여기기.

이렇게 서로 노력함으로써 우리는, 수년간 ‘사랑과 전쟁’ 모녀 편을 찍을 만큼 다양했던 갈등 경험을 잊고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사를 끼지 않은 둘만의 자유여행이 망설여진 것은 모녀여행에 대한 부정적 의견들 때문이었다. 괜한 여행으로 좋아지고 있던 관계가 다시 틀어지면 안 가느니만 못하지 않은가!

하지만 필자는 딸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우려와 달리 우리는 3박 4일간의 대만 여행을 즐겁게 마치고 무사히 귀국했다. 물론 마냥 좋았던 것은 아니다. 딸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다 해주던 아빠를 대신해야 하니 힘들었을 것이고, 필자 역시 남편보다는 어려워 눈치를 살피는 불편함은 있었다.

그렇지만 다툼은 없었다. 오히려 사이가 더 좋아졌다.

낯선 곳에서 서로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 더운 날씨에도 손 꼭 붙잡고 다녔으니까.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하며 살피는 모습이 남들 보기에는 찰떡궁합 모녀로 보여 부러움과 시샘을 받았을 지도 모르겠다. 다시 생각해도 흐뭇한 광경이다.

아무런 정보 없이 따라나선 어린아이 같은 필자에게 여행지에서의 딸은 누구보다 듬직한 보호자요 리더였다. 할인할 때 미리 비행기와 호텔을 예약해두어 저렴하면서도 편안한 여행을 선사해주었고, 지하철 투어와 버스 투어를 적절히 안배하여 다양하고 알찬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평상시 하루에 천 걸음도 안 걷던 필자가 3만보 가까운 강행군에도 지치지 않았던 것은 친구들과의 여행을 답사 삼아 불필요한 부분을 걸러낸 딸의 배려 덕분이다. 입맛에 잘 맞던 음식들 역시 직접 시행착오를 겪은 후 나온 혜택이다.

시간의 흐름 속에 많은 것이 바뀌어 간다. 모습도 바뀌고 생각, 행동도 바뀐다.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고 또 노인이 되듯이 어릴 때는 미숙하여 엄마의 손과 발을 바쁘게 하던 딸이 훌쩍 자라 어느 새 둔해진 엄마의 눈, 코, 입 그리고 손발이 되어주고 있다.

그만큼 나이 들어감이 느껴져 슬프기도 하지만 딸의 성숙되어지는 모습 속에서 희망을 찾는다.

올해 들어 <쓰리 빌보드>, <레이디 버드>, <플로리다 프로젝트> 등 다양한 모녀지간 소재의 영화가 잇달아 나와 감동을 주고 있다.

시간 날 때마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나 연극, 혹은 책을 찾아보며 앞으로 남은 딸과의 인생여행을 어떻게 하면 좀 덜 힘들게 또 더 알차고 행복하게 할까 계획을 짜보아야겠다. 이번에 딸의 노력으로 편안하고 행복한 여행을 누렸던 것처럼 딸에게도 편안한 인생여행을 선물해주고 싶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하루 만에 딸에게 “우리 다음에 또 어디로 갈 거야?” 하고 물었다.

살짝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던 딸의 입에서 어떤 대답이 나올지 한껏 기대를 가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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