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경숙의 그림으로 만나는 세상 (인문학 공간 ‘벗에게 가는 길’ 대표)

고전(古典)의 조건을 아시나요? 책장엔 꽂혀 있되 완독한 이는 없는 것이랍니다.

물론 우스갯소리지만요. 아무래도 고전이라는 육중한 무게는 완독이 쉽지 않는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지요. 그럼 명화(名畵)의 자격은 무엇일까요?

오늘, <그림으로 만나는 세상>의 첫 편으로 안산의 공식 지정 화가(^^)이자 대표 그림인 김홍도의 <서당>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누구나 보았고 어디에도 있으나 흘낏 지나쳐버린 우리 그림의 깨알같은 재미를 느껴 보시길 바랍니다.

한 학동이 훈장에게 종아리를 아프게 맞았나 봅니다. 아마도 숙제를 다하지 못한 게지요. 아이는 한 손으로 대님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습니다. 아이는 억울한 듯, 창피한 듯 몸을 웅크립니다. 그 와중에 왼 쪽의 아이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터지는 웃음을 참고 있습니다. 마치 “아프지?” 하고 놀리는 것 같습니다.

왼쪽 줄은 행여나 훈장님이 다음번에 부르실 까 염려되는지 열심히 외우는 모습입니다. 오른 쪽을 볼까요? 일찍 장가를 간 갓 쓴 학생이 있군요. 얼굴이 환한 걸 보니 훈장님의 질문에 너끈히 대답할 기세입니다.

그 아래 아이는 무척 총기 있어 보이는 군요. 가리마가 단정하고 자세도 흠잡을 데 없습니다. 그 다음 아이는 얼굴에 장난 끼가 가득합니다., 어라, 그 다음 학생은 무척 주눅이 들었군요. 잔뜩 겁 먹은 표정입니다. 앞에 계신 훈장님은 학동들의 얼굴만 보아도 누굴 시켜야 할 지 아실 듯합니다.

회초리를 든 훈장님은 아이의 모습이 우스운 지 얼굴에 온통 웃음이 역력합니다.

꾸중은 하였으되 울고 있는 아이를 보니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한 모양입니다. 게다가 김홍도는 대각선 구도에 관람자의 상상 공간을 확보하듯 널찍하게 앞 쪽을 열어 두었습니다. 시선은 웃음을 담은 훈장에게서 울음을 훔치는 아이에게 그리고 좌 후로 앉아있는 여러 학동들의 소란과 들뜸으로 옮겨갑니다.

그림 전체에서 ‘까르르’ 웃음소리가 굴러다닙니다. 시각적 표현방법에서 청각적 호응을 이끌어내는 빼어난 장치입니다. 그리고 그런 공감각적 울림을 붓 끝으로 살짝 눌러 표현한 눈에서 드러나게 합니다. 명화의 조건 중의 하나, 눈으로 보지않고 온 몸으로 느낀다고 합니다.

김홍도는 영조 21년(1745년)에 태어났습니다.

환갑은 넘겼다 하나 졸년은 확인되지 않았지요. 그의 화력(畵力)은 29세의 나이에 영조의 어진화사(御眞畵寫)을 담당할 정도였으나 그의 눈은 평민들의 소박하고 단촐한 삶에 자주 머물렀습니다. 그의 <속화첩>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씨름>, <우물가>, <새참>, <집 짓기> 등 부드럽고 따뜻한 눈으로 서민의 시간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녹아 있습니다.

안산에 머물렀다는 그가 남긴 <고기잡이>는 밀물 때 멋모르고 들어왔다 썰물에 어살(나무울타리)에 갇혀 빠져 나기지 못하는 고기를 배에 담는 풍요로운 바닷가의 하루가 들어있습니다.

“참 된 스승은 친구가 될 수 있어야 하고 진정한 친구에게선 스승이 모습이 보여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5월15일은 스승의 날입니다.

점심시간 전에 도시락을 까먹고 운동장에서 전체 기합을 받으면서도 낄낄거리며 행복했던 학창시절, 근엄하지만 웃음이 넘쳤던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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