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터넷을 조회하다 수 년 전에 보았던 <한 젊은 목회자의 죽음>이라는 CBS 프로그램을 다시 보았다. 지하 개척교회에서 목회를 하던 한 젊은 목사가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병에 걸렸는데 돈이 없어 약 한번 써보지 못하다가 어린 세 아이를 사모에게 맡기고 하늘나라로 갔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와 가난을 못 이겨 자살을 선택한 목사의 충격적인 이야기가 다큐멘터리 식으로 전개되었다.

요즘 교회들이 많이 커졌다.

기독교 신자인 나는 교회가 커지고 늘어나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만큼 사회에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긍정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크고 부유한 교회는 점점 더 커지면서 여러 비리문제가 불거져 나오고 작고 가난한 교회는 점점 더 작아져서 설 자리를 잃어간다는 것에 있다. 이것은 비단 교회에만 해당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종교에 있어서조차 부담 없고 편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습성 때문일 것이다.

큰 교회에 가면 누가 누군지 몰라 봉사하라고 붙잡는 사람도 없고, 헌금을 내든 안내든 직접 대놓고 뭐라 하는 사람도 없다. 또 시설이나 프로그램이 웬만한 문화센터보다 잘 돼있어 혜택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건 매주 출석하지 않아도 체크가 되지 않아 바쁜 현대인에겐 더없이 좋은 조건이 된다. 그래서 큰 교회에는 신자는 많아도 성도는 적다는 말도 있다.

반면, 작은 교회는 어쩌다 새 신자가 오면 많은 관심을 쏟는다. 그러나 그걸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수가 늘지 않는다. 성도 수가 십여 명 안팎인 교회가 의외로 많다. 수입보다 유지비가 더 많이 나가도 사명감으로 시작한 사역이라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적자재정을 메꾸느라 제2의 직업을 갖는 목회자들도 있다. 교회 전체적인 관리시스템이 필요한 부분이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졸업을 앞둔 신학생들 사이에선 큰 교회 교역자가 인기란다.

비전 없고 가난한 작은 교회나 궁핍한 개척교회보다는 훨씬 안정되고 잘만 하면 부목사가 될 수도 있고 규모는 작더라도 담임목사로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힘든 전도자의 사역보다는 편한 직장인으로서의 목회를 원하는 젊은 신학생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 왠지 씁쓸하다.

사람들은 크고 화려한 것을 좋아한다.

작고 아담한 것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다수가 그런 것 같다. 대기업, 대형 할인마트, 체인점 형식의 대형 음식점, 대형 놀이공원, 심지어 아파트도 대형 아파트단지를 선호한다. 그러니 종교에 있어서도 큰 곳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리라.

고급스러움, 편리함, 궁중심리 등 큰 것들에는 사람을 유혹하고 만족시키는 무언가가 있다. 그런데 크고 화려함에만 빠지다 보면 우리도 모르게 잊고 잃는 것이 생긴다. 사치에 대한 문제결여, 작고 힘없는 것들에 대한 무관심, 정의와 불의에 대한 혼돈, 인간관계의 문제점 등을 놓칠 수 있다. 약값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 주변에서 수 천 만원 하는 대리석 시비를 세우는 교회(정치・경제・종교・교육・문화・체육계 너나 할 것 없이 다)들만 봐도 알 수 있다.

큰 것만 선호하는 사람들이 줄지 않으면 대형화는 계속 될 것이고 하나둘 문제도 불거져 나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대형 선호도를 줄인다면 교회뿐 아니라 각계각층에서 덩치를 크게 키우려고 혼신의 힘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수요가 없는데 공급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래서 정신 바짝 차리고 외형적인 것보다는 내실을 볼 수 있는 눈을 키워야겠다. 그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과 옳은 것에 대해 소리 내 말할 수 있는 용기도 길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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