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차라리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싶었다. 4월 8일 밤, MBC가 방송한 세월호 관련 ‘스트레이트’라는 프로를 보면서 나는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었다. 4년 전, 4월 16일 그 날 오전 10시 17분, 희생학생이 남긴 마지막 카톡, “지금도 기울어!”라는 자막을 보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 졌다. 절망 속에서 절규하는 아이들의 고통이 생생했다. 어른으로서 아빠로서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세월호 사고 당일 사고해역에 가장 먼저 도착한 건 초계기 B703. 그런데 이 초계기는 사고 해역에 3시간이나 머물면서도 세월호와 교신조차 하지 않았다. 이어 도착한 해경 헬기들도 마찬가지, 현장 지휘관이 탑승했던 해경123정 역시 세월호와 교신을 하지 않은 건 물론 퇴선 방송도 선내 진입 지시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거짓 기자회견까지 열어 진실을 가리기에 급급했다. 1분 1초가 아까운 그 시간에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감추려 했을까? 의문이 크게 남는다.

해경 지휘부 역시 역할을 포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해경지휘부가 123정에 지시한 내용은 ‘퇴선 시켜라. 탈출시켜라’가 아니라 ‘승객들이 동요하지 않게 안정시켜라’였다. 아이들이 살려달라고 울부짖을 때, 어른들은 없었던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무능해서 구조를 못한 것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는 구조 실패가 아니라 적극적인 구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 상황파악도 안하고, 선내 진입도 안하고 퇴선 명령도 안했다. 적절한 퇴선유도 조치가 이루어졌을 경우, 거의 모든 승객들의 탈출이 가능했을 터인데, 그리 하지 않았다. 다 죽였다. 도대체 왜 그렇게 한 것일까?

그러고도 구조 책임자 가운데 처벌 받은 사람은 단 한사람, 123정장뿐이다. 그래서 세월호는 끝난 게 아니다. 그래서 세월호는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결코 끝날 수가 없다. 억울한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한다. 세월호는 왜 침몰했는가? 해경은 왜 세월호와 교신하지 않았는가? 왜 탈출을 지시하지 않았고 왜 선내에 진입하지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왜 구조하지 않았는가?

세월호 참사 4주기다.

4월 16일 4주기가 지나면 그동안 유지되어 왔던 화랑유원지 내의 정부 합동분향소가 철거된다. 주변에 있는 세월호 관련 콘테이너 부스들과 조형물들, 경기도 내 공공기관 중 지금까지 남아 있던 경기도청과 경기도교육청 세월호 분향소도 함께 철거된다. 이미 안산시 내에 있던 세월호 관련 천막이나 플랜카드 등이 모두 치워졌으니 이 4주기만 지나면 이제 안산시내에 세월호 흔적은 하나도 없게 되었다.

그러나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다시는 이 땅에 세월호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하는 것은 우리의 사명이다. 세월호는 침묵이 아니다. 함성이다. 세월호는 반딧불이 아니다. 활화산이다. 여전히 우리에게 ‘가만있으라.’ 강요한다면 그것이 바로 야만이다.

이제 유일무이하게 안산에 남을 4.16 참사의 유산은 세월호 추모공원뿐이다. 화랑유원지 한 쪽 약 7천 평, 지금은 나대지로 잡풀만 우거져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이곳을 추모공원으로 조성하여 많은 이들이 찾는 명품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 부디 정치적 이해로 반대하고 선동하는 일이 없기를 소망한다.

역사는 촛불시민혁명의 단초는 ‘세월호 참사’라는 사실을 엄중히 기록할 것이다. 그 역사의 중심에 ‘안산’이 있다. 이제 안산은 세계로부터 주목받는 도시가 되었다.

우리는 위대한 도시, 자랑스러운 시민으로 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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