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lest month)”이라는 것은 미국계 시인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Thomas Sterns Eliot)의 시 ‘황무지(The Waste Land)’의 시의 한 부분에서 인용한 말이다. 근대사에서 4월에는 정치적 변수, 혁명, 사망, 정치인들의 구속, 경제적 침체가 4월에 가장 많이 있었기 때문에 나온 말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자연스럽게 4월이라 하면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생각이 자리를 잡을 수 있어 좋지 않은 일이 발생되거나 사건 사고가 발생되면 4월과 결부시키곤 한다.

사람들의 관념을 깨트리는 것은 자연이다. 앙상하게 마른 나무 가지에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이 차례로 피어오르는 모습만을 봐도 닫혀 있던 마음에 희망을 불어넣기에 충분하다. 또한 4월에는 가족끼리 마음을 모아 미래를 생각하며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식목일도 있다. 일제 강점기에 무분별한 벌목과 적송의 남벌로 울창했던 숲이 사라져 민둥산이 되었는데, 해방이 된 이후 1948년 식목일을 제정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6.25한국 전쟁으로 기근을 모면하고자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고, 땔감으로 나무를 마구 채취해 다시 산림이 황폐화되었다. 하지만 식목일에 나무를 심는 일에 온 국민이 관심을 갖게 되어 과거의 민둥산이 오늘날 울창한 숲으로 된 것이다.

자연을 거울삼아 절망과 부정적인 생각을 깨고 미래를 내다보며 내일의 희망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 곧 그것이 비전인 것이다. 현재의 문제에 매몰되거나 당장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채우려 한다면 결국 미래는 황폐한 민둥산이 될 수밖에 없다.

인생의 여정에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반드시 있게 마련인데, 그것을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다르게 된다. 어떤 시련과 환란을 만날 때 그것을 원망하고 불평만 한다면 무의미한 삶이 된다. 하지만 역경을 참고 기다리며 감내할 때는 시련과 고난의 시간이 참으로 소중하고 값진 선물이 될 것이다. 17세기 스페인 철학자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신은 우리를 채찍으로 길들이지 않고 시간으로 길들인다.”라고 했던 것처럼 고난을 인내로 참고 기다릴 때 희망의 결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라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역경을 어떤 자세로 맞이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는 것이다.

4월의 슬픔과 아픔을 생각하며 잔인한 달로만 떠올린다면 어둠이 엄습해올 것이고 비전을 볼 수 없다. 하지만 먹구름 넘어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을 생각하면서 고난을 참고 이겨낸다면 더 큰 자신감과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성경에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게 된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에게 환난과 고난은 감당할 수 없는 절망이 아닌 오히려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4월의 고통과 슬픔을 승화시켜 밝은 미래를 그려보며 희망을 날개를 펼쳐보자. 미래는 생각하고 바라보는 대로 우리 앞에 다가온다.

4월은 분명 우리에게 더 큰 기대를 하게 하는 희망의 계절이다.

스피노자가 말한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며 바로 지금 희망의 나무를 심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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