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동산고등학교 교장.

올 해 1월 말, 8년 전 동료의 장례식 자리에서 당했던 성추행 사건이 세간에 폭로되며, ‘나도’라는 의미의 ‘Me Too운동’이 사회 각계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더 끔찍했던 성추행 및 성폭력 사건이 있었음에도 이번 사건이 사회전반에 경종을 울리며 확산된 큰 이유 중 하나는 피해자 서지현 씨가 ‘검사’였다는 점에서였을 것이다.

지식인의 상징이자 사회의 정의를 실현해야 할 검찰에서 조차 검찰에서 성추행 사건을 오랜 시간 동안 은폐하고, 인사권 등을 이용하여 피해자를 벌하는 등 ‘구조적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는 점에 우리 모두가 놀랐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Me Too운동’으로 폭로되고 있는 사건들이 무시무시한 이유는, 이러한 건들이 단순히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문학계, 영화계, 연극계, 학계 등 사회 곳곳에 독버섯같이 퍼져있다는 실상을 알자,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목을 떨궈야 했다.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눈에 보이는 ‘주관적 폭력’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적 폭력’이 물리적인 폭력보다 더 잔인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다. 그의 관점을 빌려보면, ‘Me Too 운동’의 본질은 암묵적으로 가해자를 은폐하고, 피해자를 침묵시키는 ‘구조적’ 기괴함과 이러한 ‘폭력’을 양성하고 있는 사회 대한 고발이 아닌가 한다.

우리는 유년기의 대부분을 학교라는 장소에서 지내게 된다. 교육현장은 형식적이지 않고, 심층적인 성교육을 통해 잘못된 남녀에 관한 통념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학생들과 사회적으로 공공연하게 발생하고 있는 성차별적인 발언 및 성역할에 대한 비판적이고 심층적인 토론 등을 통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는 최전선에는 교사들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와 더불어, 교육 현장에서 여성이 ‘약자’가 아니며, 사회의 ‘구조적 폭력’의 피해자로 남을 필요가 없음을 상기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

교사는 내일을 심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사회적인 공감력은 커리큘럼만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은 아닐 것이다. 우리 교정에도 다른 학교에서와 같이 지적(知的)이고, 다재다능한, 멋진 여성 선생님들이 여럿 계시다.  그 분들의 교내 역할과 노고, 여선생님들에 대한 처우 등은 학생들이 미래의 여성상을 그리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행복한 여성이 있어야, 행복한 남성도 있을 수 있지 않은가?

이제, ‘Me Too운동’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나도 피해자들의 아픔을 함께하고, 함께 변화를 촉구한다는 의미의 ‘With You 운동’이 시작되고 있다.

교육자로서, 나도 Me Too운동에 동참한다. #With You

저작권자 © 반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