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리는 한마디로 우리 시대 모범생이다. 학교생활 뿐 아니라 사회생활, 가정생활에 이르기까지 그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모범생이 전부였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만 본다면 그는 틀림없는 모범생이었지만, 그늘에 가려진 그의 삶을 자세히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술이라면 근처에도 가지 않는 그였지만 간혹 알코올중독자처럼 폭발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그의 모습을 가족들은 늘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봐야만 했다.

김 대리와 같이 낮은 자존감과 두려움으로 인해 삶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가리켜 ‘성인아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부모의 정서적, 육체적 폭력으로 인해 어른이 된 후에도 어린 시절 겪었던 정서적 어려움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현재 알코올중독자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많은 문제를 느끼고 사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특히 남편이나 아내 가까운 자녀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어하는 대다수 사람들을 이런 ‘성인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 이들은 어린 시절 정서적인 상처로 인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오게 된다. 그 상처가 너무나 고통스러워 감정을 느끼거나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심지어는 행복하다거나 즐겁다거나 하는 당연한 감정까지도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이 모든 것이 어린 시절 겪었던 정서적 어려움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가정환경 때문이다.

건강치 못한 가정에서 자란 관계로 이들은 늘 “말하지 말자”, “믿지 말라”, “느끼지도 말자“는 무언의 압력을 받으며 살아오게 된다. 이러한 경직된 규칙은 어른이 된 현재까지도 이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외로움도 느끼고, 사람들 특히 권위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느낀다. 또한 화를 내는 사람이나 나에 대하여 비판하는 사람들 앞에 서면 당황스럽고 위협감을 느끼기도 한다. 때로는 자기 스스로 충동적인 행동을 하기도 하고, 그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더 친근감을 느끼거나 마음을 빼앗기고, 그런 정서적으로 문제를 가진 사람에게 동정심을 느끼며 결혼까지 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성인아이들은 마치 피해자처럼 생각하며 정서적으로 연약한 사람을 만나면 그에게 마음이 끌리는 경향이 있으며, 동정심을 느끼거나 사랑과 혼동하여 깊은 관계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그들은 식구들에게 또는 친구들에게 버림받을까봐 두려워하며, 거절되거나 버림받았을 때의 감정을 경험하고 직면하려고 하기 보다는 그것이 자신에게 해를 주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그 관계를 깨뜨리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것은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 혹은 다른 역기능 가정에서 자랐을 때 아무도 정서적으로 그들과 함께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성인아이가 미국과 한국 모두 90%에 달한다고 한다.

아동복지시설을 운영하면서 미래의 잠재적 성인 아이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복지의 1차적 목표는 먹는 것과 교육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이들을 바라본다면 상담 프로그램의 강화가 절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네트워크를 통해 역기능 가정에서 자란 부모들의 지원 그룹 운영과 자녀들의 상담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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