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가 70만 명이 넘으면 대략 중견도시라고 한다. 50만 명 이하의 도시에 비하면 작지도 않고 100만 명이 넘는 도시에 비하면 작은 어지간한 형태의 도시 형태를 가리키는 말인 듯하다. 과거에는 인구가 70만 명 쯤 넘으면 누가 뭐하고 사는지 전혀 몰랐다. 공간적 접촉이 없는 한 잘 사는 지, 못 사는 지 아니면 뭐하고 사는 지조차 몰랐던 것은 정보통신의 미흡함이 주는 유익함이기도 했다.

과거 지역 신문에 몸 담았던 경험에 비춰보면 기자들은 소위 정보 제공자와 수혜자를 연결하여 먹고 사는 거간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 전자 신문이 등장하면서 종이 신문은 곧 종식될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지금까지 굳건히 존재하는 것을 보면 종이신문이 주는 촉감의 매력과 활자의 마력이 아직도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기업체에서 발간되는 이런 신문의 틈새를 SNS라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교적인 연결망을 제공하는 이러한 서비스는 단체에 가입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자의반 타의반으로 가입하게 된다.

SNS의 최근 흐름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토마스 쿤이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제안한 패러다임은 한 시대의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이론이나 방법, 문제의식 등의 체계였다. 그러나 SNS는 소통 방식과 디바이스를 통한 변화를 꾸준히 추구해 왔다. 기존의 카페나 블로그는 내가 글을 올리면 다른 사람이 내 홈을 방문해야한 읽을 수 있었다. 방명록은 필수요 장문의 메시지를 기록하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유행하는 SNS는 공유하는 마이크로 블로그의 개념이 크다. 글을 공유함으로써 방문하지 않고도 내 홈에서 친구의 글을 볼 수 있고, 장문의 메시지보다는 현재의 상태를 단문으로 기록하는 형태로 바꿨다.

또한 기존의 SNS가 주로 데스크탑 컴퓨터에서 이뤄졌다면 새로운 모바일 환경은 스마트폰에서 작성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치기반 기반 서비스와 증강현실 기술의 발달로 정보 전달력은 과거보다 빨라졌다. 이제는 신문을 보지 않아도, 컴퓨터를 켜지 않아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손 안에서 볼 수 있게 됐다.

단체 카톡방은 이런 면에서 자의반 타의반 개인의 사적인 이야기부터 모임 돌아가는 상황을 본의 아니라 속속들이 알게 된다. 최근 모 단체의 카톡방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공방을 마치 중계방송 보듯이 읽게 되었다. 며칠째 이어지는 공방의 진실은 단체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회원의 제명을 두고 개인사냐 아니면 단체의 명예 훼손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다투는 것이다. “이사회의 결정을 회장이 미루면서 일이 더욱 커졌다. 결국 당사자가 고소 고발하는 단계까지 와 버린 경과를 보면서 임원진이 총사퇴해야 한다.”

이런 치열한 담론은 결국 비상대책위원회 결성으로까지 간 모양이다.

한번 한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말과 글은 조심해서 해야 하고 써야 한다. 과거에는 이러한 문제가 생기면 편지를 썼다. 편지라는 매체는 시간적 여유를 갖게 한다. 그 순간 욱해서 썼던 편지도 다음 날 보면 고칠 곳이 보이고 다시 마음을 다스리게 된다. 그러나 SNS는 감정 전달이 즉흥적이다. 마음을 추스를 시간도 없고 내용을 정리할 여유가 없다. 그렇다보니 서로 간 감정 대립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간혹 세상을 조금 살았다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세상이 참 좁죠?” 그렇다. 우리가 사는 지역은 넓은 것 같지만 결국 사람의 입만큼 넓지 않다. 우리만의 비밀스런 얘기가 결국 지역 사회에 회자되고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

당사자는 자숙하고 회원들은 냉정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보다 성숙해지는 단체를 바라는 마음은 다들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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