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선감학원’은 안산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매우 슬픈 사건이자 안산시민들이 꼭 기억해야 할 역사다. 아마 대부도 땅에 소년들의 시신 수십 구가 묻혀 있다고 상상만 해보라. 얼마나 끔찍하고 안타까운 일인가? 그런데 상상이 아니라 사실이다. 현실이다.

지금도 대부도 땅 속에 아이들의 뼈가 묻혀 있다.

이 사건을 논하려면 역사를 되짚어봐야 한다.

1940년 5월 30일. 일제 강점기 경기도지사로 부임한 스즈카와 히사오는 문제아들을 관리하고 정리하기 위한 일종의 수용소를 고민했다. 여러 부지를 물색하던 그는 당시 부천군 대부면의 선감도를 최적지로 꼽았다.

이후 스즈카와 지사는 1941년 8월 26일 선감도를 방문, ‘선감학원’의 최종 설립을 결정했고, 1942년 4월 1차로 500여 명의 소년을 수용됐다. 수도권에 거주하던 일종의 부랑아 및 갈 곳을 잃은 아이들이 이곳에 수용됐다. 당시 육지와 격리된 섬인 선감도는 외부와의 접촉이 철저히 차단된 특성을 지녔다. 이 때문에 자급자족 형태를 띠었는데 소년들은 그 탓에 힘든 노동을 감수해야만 했다.

어린 나이에 견뎌야 하는 노동의 강도는 상당했고, 이는 곧 탈출로 이어졌다. 탈출한 소년들은 이내 붙잡혀 구타 등을 당했다는 사실은 당시 생존자들의 증언에서 나오고 있다. 그나마 붙잡혀 맞는 일은 다행이었다. 배가 고파 독버섯으로, 바다를 건너다 익사한 어린 영혼들이 수십, 수백 명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때 시신 처리로 골치를 앓던 일제 운영자들이 어린 영혼들을 선감도 야산에다 묻은 것이다.

이후 이곳은 해방 후 경기도가 나서서 다른 용도로 운영하다 지금은 타 시설이 들어서 안산시가 위탁운영을 맡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경기도와 안산시, 심지어는 SBS도 잘 알고 있다. 사안이 워낙 중대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라 관심도가 매우 높다.

그런데 안산시만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외면하고 있다.

실제로 ‘경기도의회 선감학원 진상조사 및 지원대책 마련 특별위원회’와 2016년 선감학원 일원에서 열렸던 위령제를 주최한 ‘경기도 선감학원 사건 피해지원 및 위령사업위원회’ 위원장이 모두 안산시 소속 도의원이 아니다. 고양시나 광명시 소속의 정치인이다.

현재 안산시 소속 원미정 도의원(더민주)만이 선감학원특위 간사를 맡고 있고, 안산시의원 2명도 사업 추진 한참 후에야 위원으로 편성됐다.

아무리 경기도가 해방 이후 운영을 했기에 도가 나서 추진하고 있지만 선감학원은 명백히 안산에 있다. 어린 소년들의 한이 맺힌 시신이 안산에 묻혀 있는데 안산시는 경기도 눈치만 보는 모양새다.

아픈 역사라 들추지 말자는 것인지, 예산이 소요되기 때문에 꺼리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9.11테러는 미국의 아픈 역사다. 그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넋을 위로하고 그 역사적 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 폐허가 된 건물과 주변을 보존하고, 또 공원화 한 것이 아닌가.

선감학원 사건은 가슴을 저리는 눈물을 머금고 있다.

지금이라도 안산시가 나서 서둘러 시민들에게 알리고 그 넋을 기려야 한다. 그래야만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어린 영혼들이 훗날 안산시를 기억할 것이다.

안산시가 선감학원 문제에 나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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