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맘충’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져 안 그래도 육아로 힘든 엄마들의 마음을 후벼 판다. ‘맘충’은 엄마를 뜻하는 ‘맘(mom)’과 벌레를 뜻하는 ‘충(蟲)’의 합성어로, 공공장소에 아이를 데리고 오는 젊은 엄마에 대한 혐오를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신조어다.

처음에는 일부 몰지각한 엄마들의 행동을 비난하는 차원에서 등장해 나름 공감을 샀다. 하지만 점점 “집에서 노는 주제에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맘충, 남편이 뼈 빠지게 돈 버는 동안 대낮에 카페에서 노닥거리는 맘충, 화장실에서 기저귀 가는 맘충, 식당에서 이유식을 데워달라는 맘충, 아이를 떼어놓고 직장에 나가는 독한 맘충,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는 맘충”이라며 평범한 엄마들까지 벌레 취급하니 문제다.

아이들의 출입을 제한하는 ‘노키즈존’도 점점 늘고 있어 젊은 엄마와 아이들을 주눅 들게 한다. 아이를 동반했다가 입장거절 당하거나 맘충이라는 말을 듣는 상황을 접하게 되면 외출이 두려워진다고 한다. 수많은 여성혐오 표현과 함께 등장한 ‘맘충’이라는 단어는 이제 도를 넘어섰다. 출산 최하위 나라에서 국가의 출산장려정책과 상반되는 이해할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이 엄마들을 위협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사회학자들은 불안한 사회구성원들이 늘 혐오의 대상을 찾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녀사냥처럼 희생양이 필요한 것이다. 젊은 엄마는 어리고 여성이라는 약한 존재의 조건을 충족한다. 물론 사회적 지탄을 받을 만큼 몰지각한 행동을 하는 엄마들도 있다. 하지만 그 일부로 인해 성스럽기까지 한 ‘엄마’라는 존재를 ‘맘충’으로 둔갑시켜서야 되겠는가!

상황이 이러하니 알게 모르게 육아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엄마들이 늘고 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 교육용 책과 프로그램도 접해보지만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매일 반복되는 육아전쟁에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말이 더해져 점점 좋은 엄마에서 멀어진다. 주변의 이해와 도움 없이 젊은 엄마 혼자 육아를 책임지는 것 자체가 무리다.

적당히 모르는 척 해주는 것이 구지 아는 척하면서 지적하고 가르치려 하는 것보다 낫다. 완벽한 엄마는 없다. 느긋한 성격의 소유자는 다소 게으른 면이 있고 바지런한 성격의 소유자는 다소 까다로운 면이 있다. 누구나 어느 한쪽으로 조금씩 기울기 마련이다. 그러니 사회가 완벽하게 양육하는 엄마만을 요구한다면 대다수의 평범한 엄마들은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댈 수밖에 없다.

젊은 엄마들이 조금 어설퍼 보이더라도, 요즘 아이들이 조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꼭 지적하려고만 하지 말고 지켜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어찌 보면 젊은 엄마들이 양육에 서툰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서툴다고 무식한 엄마로 취급하여 야단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힘든 점을 같이 나누고 받은 상처를 위로해서 엄마들 마음부터 다독였으면 한다. 그것이 오히려 아이들을 잘 양육하는 기초가 될 것이다.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죽는다.

누군가가 쉽게 던진 말이 양육에 서툰 젊은 엄마들에게는 큰 상처가 되어 설 자리를 잃게 만든다. 그러니 더 이상 여성혐오와 약자혐오의 결정판인 ‘맘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아야겠다.

이제 양육의 보람과 엄마라는 존재의 신성함을 젊은 엄마들에게 되찾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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