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4세가 신음하고 있다. “할아버지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고려인은 19세기 말(구한말) 국내 지주들과 관료들의 폭압을 견디다 못해 연해주 등으로 이주해 간 조선인을 말한다. 1945년 정부 수립 이전에 외국으로 나간 고려인을 1세로 보고 있으며, 4세는 이들의 손녀뻘이다. 고려인 4세가 ‘할아버지 나라’라고 표현하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고려인 4세의 가장 큰 문제는 성인이 되면 이 나라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이들이 한국에 머무를 수 있는 기한은 ‘성인’까지이다. 재외동포법에 따른 것이다.

재외동포법 시행령 제2조에 따르면 동포의 범위는 두 가지다. 첫째,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했던 자 또는 그 직계비속으로서 외국 국적을 취득한 자.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 국외로 이주한 자도 여기에 포함된다. 둘째, 부모의 일방 또는 조부모의 일방이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했던 자로서 외국 국적을 취득한 자를 말한다. 따라서 고려인3세까지만 동포로 인정되며 고려인4세는 동포로 인정되지 않는다.

고려인4세는 부모가 어떤 비자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19~24세까지만 한국에 머물 수 있다. 이후에는 현행법상, 동반비자 기간이 만료돼 한국을 떠나야 한다.

3개월 마다 관광 비자를 갱신하는 방법도 있지만 자국으로 출국했다가 다시 입국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은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대개 한국과의 이별뿐이다.

‘외국인’ 신분이다 보니 교육혜택도 이들을 비켜간다.

김영숙 고려인문화복지 지원센터 사무국장은 한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이들은 외국인 신분이라 지자체나 민간기업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제공되는 학습지 지원에서 제외되는 등 각종 복지혜택도 못 받는 현실"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 국내 체류 고려인 대다수는 열악한 제조업체나 일용직으로 일해 경제적 수준이 낮고 한국어 소통도 어렵다. 따라서 일반 외국인처럼 대학에 입학하거나 안정적인 직장을 잡는 일이 드물다. 그런데도 현행 영주권 취득 기준은 동일업체 4년 이상 근무, 자산 3천만원 이상 보유 등 문턱이 너무 높다. 고려인 4세들이 국내에 정착하려면 결국 학업을 통해 대학, 전문직의 길로 가야하는 만큼 이들에게 교육은 희망을 넘어 생존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고려인 4세 장아나스타시야 양은 “한국어를 더 잘 알고 싶고 열심히 공부하고 싶어도 경제적인 문제들로 인해 대학교에 진학을 못하는 친구들이 더 많다”며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 하기 때문에 전학비자를 못 받고 한국을 떠나야 하는 고려인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국회는 이를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었는지, 소매를 걷어 붙여 고려인 지원에 대한 법률을 발의했다. 고려인의 안정적 체류·취업·보육·건강보험적용 문제 등 개선안이 담겼다. 총 5건이 발의됐고, 이중 1건은 상정됐다.

그 덕분에 이제, 고려인들은 잠시 한 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이를 계기로, 그들이 머리에 이고 있는 삶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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