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 동안 아이들과 함께 여지없이 미술관과 동물원을 다녀왔다. 마치 일정한 시간이 되면 당연히 들려야 하는 장소의 마법에 걸린 것처럼.

과천시 청계산 자락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도심에서도 한참을 떨어진 이곳에 미술관을 지은 이유가 궁금할 법도 한데 사람들은 불편 한 마디 없이 잘도 다닌다. 평소 찾기 쉽지 않은 미술관 옆에는 우연히도 서울대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미술관 옆 동물원. 마치 영화 제목 같은 그럴싸한 문장의 조합이 어울리는 이 느낌은 어찌된 것일까? 우연일까 아니면 이 둘은 어떤 필연의 공통점이라도 있는 것일까?

흥미롭게도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 미술관과 동물원은 생긴 시기와 만든 동기가 비슷하다. 19세기에 본격화된 동물원은 전제군주들의 사설 동물원인 미네저리(menagerie)를 헤게모니 목적에서 공공 이용시설로 재배치한 것에서 유래된다. 당시 국가는 자연 교육과 연구 그리고 여가활동, 동물 보존과 같은 좋은 명분을 가지고 동물원의 설립과 운영을 정당화했고 대중들의 이용을 널리 권장했다.

로스펠스의 ‘동물원의 역사’에 보면 동물원의 역사는 자본주의 성장사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팽창사와 일치한다. 동물 전시의 가장 기본적인 동기는 아름다움이지만 사실 쇠창살 속 동물들은 보여주기 위한 표본에 불과하다. 이런 선한 목적에서 사람들은 동물들을 이해하고 함께 한다는 의식을 강요당하지만 동물들에게는 개방된 자유만 있을 뿐이다.

미술관은 어떠한가?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유럽 제국들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미술품을 강탈해 보관해왔다. 근대 국가의 헤게머니는 역시 반듯한 미술관을 보유하고 있는가였다. 강국들은 국가의 정체성 확립과 힘의 우위를 보여주기 위해 가장 좋은 건물과 위치에 미술관을 개관하게 된다. 프랑스의 루브로박물관과 영국의 대영박물관 그리고 러시아의 에르미타주 박물관 등 세계 3대 박물관이 이런 욕심에서 태생한 것들이다.

이와 함께 광장, 기념 건축물, 공공 건축물, 국립묘지, 산업박람회, 퍼레이드, 국기와 국가가 이 시기에 태어났다. 잘 알다시피 영국이 개최했던 산업박람회에 자극받아 1889년 프랑스 혁명 100돌 기념 파리 만국박람회(EXPO) 때에 높이 320.75미터의 격자형 철탑이 세워졌다. 에펠탑이 바로 그것이다. 에펠탑은 박람회장인 광장으로 통하는 입구며 프랑스라는 나라의 위상을 세계에 보여주기 위한 상징이었다. 오랜 문화유적에 반하는 철재 사용 때문에 박람회 기간이 끝나면 철거를 조건으로 설치됐던 에펠탑은 그 인기에 힘입어 지금까지 세느 강변을 도도히 지키고 있다. 또한 세계의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르는 역할을 당당히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광장 또한 체제의 우월성을 대표하는 공간이다. 광장은 우리 눈을 겨냥한 설계를 통해 도시 중앙에 세워지며 체제 선전을 위한 동상이 필연적으로 들어선다. 56.3미터의 기둥 위에 세워진 영국 런던의 트리팔가 광장의 넬슨 장군 동상. 금색 도장을 한 빅토리아 여왕의 동상, 광화문 네거리에 우뚝 선 이순신 장군의 동상도 체제의 우월성과 순종을 강요하는 광장 문화의 핵심이다.

가끔 도시 공간을 생각한다. 우리가 사는 도시는 어떤 체제와 생각들이 조합된 도시인가? 그리고 우리가 즐겨 찾는 광장에는 어떤 이념이 담겨있는가를. 앞으로 만들어 갈 도시 공간과 광장에는 우리 시민의 꿈과 비전을 담은 예술품들이 많이 설치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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