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끝났다. 지지하던 후보가 당선 된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동안 비어 있던 자리에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어 곧 바로 국정업무에 들어갔다.

지난 10년간 보수가 이제는 진보가 새로운 문을 열었다. 지난 대통령의 탄핵과 파면으로 더불어 구속까지의 과정을 국민들은 절반의 지지로 답을 주었다. 처음에는 ‘대선을 끝까지 뛸 수 있겠느냐?’ 는 비아냥거림도 많았고 떠나간 옛 동지들은 두 번 다시 돌아보지도 않을 것처럼 국가의 리더를 물아세우고 공격하고 새로운 리더를 찾아 떠나더니 이제는 거기에 절반이 다시 돌아 왔다.

물론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누가 잠시 앞의 일을 알 수 있겠는가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갈 방향을 찾고 내딛는 순간순간들의 상황은 파리가 달리는 천리마 등에 타고 있는 듯 불안하고 위태로울 수도 있다.

반면 벌어지는 상황을 다 받아들이고 누가 잘못을 했건 내가 속한 당이 잘못한 일이라면 잘못을 받아들이고 용서를 빌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함께 모색하는 것이야 말로 당당한 모습이다. 내가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순간순간들이 마치 하루살이가 오늘을 살다가 내일은 다시 돌아오는 나방을 이해 할 수 없고 나방은 철지나 다시 돌아오는 철새를 이해할 수 없다.

갈 방향과 가지 말아야 할 방향을 누구나 기로에 설 수 있다. 이럴 때 어느 방향을 선택하느냐는 자기가 살려고 판단하기 보다는 현 상황을 직시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직면한 상황에서 왜 이렇게 되었는지 집어보고 그렇다면 뭐가 잘못 되었는지를 고치면 된다.

그런데 이게 잘 안 된다. 내가 살아야 하니까 지금까지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회피하고 피하려하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진다. 누가 잘못했는지 따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싸움과 분탕으로 빠져든다.

누구 때문에 그렇다고 서로를 내몰기 시작하면 사실과는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금방 방향선회가 된다. 하루를 더 살려고 발버둥 치던 하루살이가 내일을 보지 못하고 내일 다시 돌아오는 나방은 그 하루살이를 이해 할 수 없다. 하루만 살다가 가는 하루살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방을 해가 지나 철이 돌아오면 돌아오는 철새는 그 나방을 이해 할 수 없다.

어디까지가 끝이고 시작인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가야 할 길을 보는 것 같다. 국민을 위한 정도 정치가 되려면 내가 살고자 하기보다 국민전체를 아우르는 정치가 절실하다.

이제 대통령이 새로 당선되었다. 긴 공백의 터널을 지나 새로운 대통령이 국정을 잘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집권당과 야당의 역할을 잘해야만 한다. 당과 당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을 우한 정치가 되도록 또 고진감래해야 할 일이 생길수도 있다.

명분이 뚜렷한 일에 이제는 나방과 철새가 아니라 굽힘 없는 역할도 필요하다. 개인의 발전을 위한 생각을 안 할 수도 없다. 살아남지 못하면 지역을 위하는 일도 국가를 위하는 일도 없다. 다만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제대로 선택해야 한다.

지금도 누구를 위한 분쟁인지 모르지만 잘잘못을 가리려고 하는 정치인들이 많은 것 같다. 국민이 때론 공감 할 수 없는 부분도 더러는 있을 수 있겠지만 먼 훗날을 위한 선경지명이 과연 어디로부터 오는지는 하루살이가 이해 할 수 없고 나방도 이해할 수 없다.

철새도 마찬가지다. 온전히 국민만 바라보고 소신의 변함이 없으면 되는 것 같다. 때로는 소낙비를 다 맞을 필요도 있다. 피하려는 순간 정치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것 같다.

다 아는 사실 앞에 눈 가리고 아웅 하는 형식으로 모든 걸 외면하려하기에는 국민의 정서가 받아들이지 않는다. 각종 언론매체와 SNS의 발달로 정치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안다.

오히려 자신만 모르는 것을 관심 있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알면 하루살이를 이해 할 수 있고 나방을 이해할 수 있고 철새를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만을 바라보는 소신 있는 정치인이 이제는 국민의 공감과 국민을 대변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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