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859년 ‘종의 기원’이라는 의미 있는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찰스 다윈은 갈라파고스 제도에서의 연구 결과를 취합해 한 권을 연구서를 냈는데 그것이 종의 기원이다. 동종이면서도 서로 다른 모양의 부리를 가진 핀치 새를 통해 그는 진화 이론을 생각해냈다. 크고 단단한 열매를 먹는 핀치 새 중 두텁고 짧은 부리의 핀치 새는 살아남고, 얇고 긴 부리의 핀치 새는 도태되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자연도태설을 생각해 낸 것이다. “환경에 적합한 변이체는 보존되고 불리한 변이체는 도태된다는 진화 이론”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자연도태설 혹은 자연선택설을 근간으로 한 ‘종의 기원’이 출간되자 이를 열렬히 환영한 사람들은 식물학자들이 아닌 오히려 부자와 권력자들이었다. 그중 허버트 스펜서라는 사회학자는 “생존경쟁에서 가장 좋은 종족이 살아 남는다.”는 사회진화론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 이론은 식물과 동물에서 발견한 자연선택의 법칙을 개인, 집단, 인종까지 적용시키며 19세기에서 20세기까지 서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강자는 점차 강해지고 약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연선택설 즉 자연법칙에 의한 필연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의 이론은 빈곤과 타락, 불공정한 사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미국 공화당은 이런 백인우월주의를 바탕으로 한 우익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옹호되고 있다.

오늘날 사회진화론은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자유방임주의와 정치적 보수주의를 지지하는데 이용되기도 한다. 시장질서에 개입하는 행위나 소수자를 위한 정책이 오히려 자연원리에 배반되는 행위라는 논리에 의해서다. 뿐만 아니라 의무교육도 교육을 어디까지 받을 것인가에 대한 선택권과 심지어 어떤 학교에 갈 것인가에 대한 결정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사회에 많이 사용되고 있는 적자생존이라는 용어는 다윈보다 스펜서의 영향에 의해서다. 식물학적 생존에서 종의 우월론으로 인해 비약적으로 개념화된 이 용어는 동양에 대한 서양의 우월주의, 선진국의 후진국 차별에 대한 근거, 식민종주국과 피식민지국과의 역할 차이를 설명하는데 영리하게 이용되고 있다.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는 “대기업의 성장은 적자생존의 결과일 뿐이다. 아름다운 장미가 자라서 감미로운 향기를 풍기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자아내는 것은 일찍이 그 주위에 나 있던 풋내기 새싹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이것은 결코 악덕이 아니다. 자연의 법칙이자 신의 섭리일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과연 어렵고 힘든 세상에서 살아남은 자만이 가장 ‘적합한 자’이고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자인가? 부와 권력과 정치의 힘을 거머쥔 자만이 현명하게 진화한 자며 그런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라고 누가 옹호할 수 있을 것인가? 고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진화는 진보가 아니다. 진화는 적응이며 다양성의 증가일 뿐이다.”라고 했듯 우리는 다양성을 가진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갈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에서 출발한 때 아닌 대선 정국. 오늘은 선거일이다. 나는 휴일을 이용해 이미 사전 투표를 했다. 15명의 대선 후보, 그리고 듣지도 못한 정당 이름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정당사도 참으로 험난하다는 생각을 했다. 도태와 진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것이 우리 정당이 아닌가 하는 생각? 그런 정치 풍토에 잘도 적응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에 나도 모르게 동조하고 있지 않나하는 심란한 생각이 오간다.

저작권자 © 반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