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학자 이현우의 우리고장 문화유산 이야기

경성당은 1850년경 건립된 가옥으로, 안채는 약 200여 년 전에 지어졌고 사랑채는 약 170여 년 전에 지어졌다. 아래채는 약 25년 전 철거되고, 그 자리에서 동쪽으로 조금 물러난 자리에 시멘트 건물 한 채를 세웠다. 사랑채는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초가였던 안채는 약 25년 전에 철거하고 서울에 있던 한옥을 이건하였다. 안채의 재목은 서울의 미아리와 종로구 당주동에 있던 헌 한옥에서 많이 가져다 썼으며, 들보는 인천에서 구입한 수입목(미송)으로 대신하였다.

원래는 사랑채 동남쪽에 각 1칸씩의 잿간과 뒷간, 그리고 3칸의 헛간으로 구성된 헛간채가 따로 있었고, 노비들이 기거하던 4채의 행랑채도 있었다. 또 사랑 마당 남쪽에 330.58㎡에 이르는 넓은 연못이 있었으나 사랑채 누마루 곁에 있는 우물물이 줄어들어 급수가 어려워지는 바람에 40여 년 전 밭으로 만들었다.

경성당의 안채 · 사랑채 · 아래채는 완전한 ‘ㅁ’자형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가인 안채 부엌 서쪽으로 각 1칸씩의 헛간과 뒷광이 이어 달려 있는데, 뒷광에는 김치 · 짠지 등이 담긴 독을 두었다. 뒷대문은 행랑 출입을 위한 것이다. 대청 지붕틀은 무고주칠량(無高柱七樑) 형식으로 걸었으며 전면에는 여섯 짝의 분합문을 달았다. 사랑채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서쪽 끝에 1칸의 누마루를 내어 지었다. 누마루 뒤쪽에 각 1칸씩의 방 [작은사랑]과 마루가 있었으나, 마루를 반으로 줄이는 대신 방을 그만큼 넓혔다. 큰사랑과 툇마루 사이에는 가로 57㎝, 세로 130㎝의 두 짝 여닫이를 설치하고 동쪽 끝에 벽장을 붙였다. 벽장문은 네 짝으로 크기는 각각 가로 69㎝, 세로 133㎝이며, 매화 ·난초 · 대나무 등의 그림을 붙여 선비의 방다운 고졸한 분위기가 풍긴다.

현재 경성당을 지키고 있는 이는 고인이 된 유문형(柳文馨)의 부인이자 차종부가 되는 권보남(權寶南)이다. 고 유문형 집안은 기호 남인을 대표하는 3대 가문 중 하나인 진주유씨 집안으로, 이 집안은 대종가에서 5대조 때 분파한 차종가이다. 고 유문형은 진주유씨 27세손이다.

 

[참고문헌]

『내고장 안산』(내고장안산편찬위원회, 1990)

『안산시사』(안산시사편찬위원회 1999)

『디지털안산문화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2008)

『안산시사』(안산시사편찬위원회 2011)

『안산시의 역사와 문화』(안산문화원 2012)

『안산 아름다운 향토문화』(안산시 2015)

『위대한 전통의 시작 Ⅰ』(안산문화원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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